올해로 13회째를 맞는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인 두 사람의 회고전이 열렸다. 하나는 김지운을 위해서, 하나는 홍상수를 위해서. 이번 영화제가 그렇게 선택한 건 아니었다. 사실 도빌영화제가 김지운과 홍상수를 주목한 건 이미 몇년 전부터의 일인데 마침 두 사람과 시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런 우연은 그야말로 참 잘된 일이다. 이번 더블 프로그램 덕분에 관객은 지난 15년간의 한국영화를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
홍상수와 김지운은 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인이기도 하지만 가장 색다른 영화인이기도 하다. 홍상수는 거의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매번 색다른 작품을 만드는 재능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놀랄 만한 일관성을 가지고 계속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반면 김지운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정확한 코드에 부응하는데 대부분이 그전 작품과 완전히 대립된다. 코미디, 서부영화, 탐정물…. 그는 프로젝트마다 이렇게 새로운 주사위를 던진다.
홍상수는 모든 작품에서 그만의 독특한 건축물을 구상해낸다. 가끔 <생활의 발견>에서처럼 건물의 대들보가 눈에 띄는가 하면 <하하하>에서처럼 때론 그것이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김지운은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배경에서 출발해 시네필이 익히 알고 있는 장면들을 많이 인용하면서도 극히 개인적인 작품을 만든다. 홍상수는 건축가, 김지운은 실내장식가다.
우리는 이렇게 두 영화인의 다른 점들을 나열하며 도빌영화제가 한국영화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남과 여>의 무대인 이 도빌 해변가에서는 좀더 미묘한 현상이 보이고 있었다. 어느 면으로 봐도 서로 반대되는 이 두 영화인은 사실 같은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둘 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결실이 많았던 시기인 1990년대를 기점으로 탄생한 예술가들이고, 둘 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첫 작품을 만들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조용한 가족>은 대담하고 극단적인 작품이다. 홍상수를 비평가들이 인정한 건 물론, 시네필도 그를 즉각적으로 주목했었다. 김지운에게는 <조용한 가족>이 대중적 인기의 시작이었는데 이것은 <악마를 보았다>까지 지속된다.
<반칙왕>의 장본인은 지난 주말 로열호텔 커피숍에서 콜라와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마시며 인터뷰에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오후가 다 지나갈 무렵 우리는 황금 같았던 김지운의 초창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지운은 <조용한 가족>이 그렇게 대대적인 관객의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블랙코미디는 그때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영화”였다며 “당시 내가 확신했던 건 관객이 뭔가 색다른 작품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이게 바로 홍상수와 김지운의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둘 다 우연성 다분했던 시도들이 무르익던 시대가 낳은 아이들이다. 그들의 첫 작품은 한국영화의 폭넓은 실험영역, 잔뜩 겉멋만 든 실패작들이 난무하던 그 영역에서 나온 눈부신 성공작이었다. 이런 작품은 계획된 프로그램이나 어떤 의지 혹은 확신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의혹과 결함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관객이 더이상 원하지 않던 것이 뭔지 잘 알았던 시절,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몰랐던 그 짧은 시절에 말이다. 이것이 바로 <조용한 가족>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존재하게 했던 것이고 이 두 영화인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를 수 있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