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올드먼의 첫 주연작은 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를 그린 <시드와 낸시>였다. 헤로인에 취해 여자친구 낸시를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했던 시드 비셔스의 짧고 참혹한 삶을, 게리 올드먼은 무시무시한 메소드 연기로 부활시켰다. 그 시절 게리 올드먼은 <파이터>의 크리스천 베일처럼 소름 끼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쉰살을 훌쩍 넘긴 게리 올드먼은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처럼 예전의 광기어린 연기를 지속하지 않는다. 배트맨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점잖은 고든 경감이 대표적 예. 최신작 <레드 라이딩 후드>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올드먼이 맡은 솔로몬 신부는 중세시대 마녀사냥에 사로잡힌 딱한 존재다. 극의 흐름상 ‘빨간 두건’ 소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솔로몬 신부가 다소 우스꽝스럽고 사악한 모습으로 단순화된 것이 좀 아쉽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역으로 보여줬던 애절한 광기를 ‘귀신 잡는 사냥꾼’으로 패러디했어도 재밌었을텐데.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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