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히치콕이 몰고온 부산의 봄바람
2011-03-24
글 : 송경원
시네마테크 부산-월드시네마 Ⅷ, 3월18일부터 24편 소개
<철의 사나이>

영화의 바다는 봄과 함께 찾아온다. 오는 3월18일부터 4월28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월드시네마 Ⅷ’의 막이 오른다. 세계 영화사에 잊지 못할 족적을 남긴 거장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과 빛나는 유산을 소개해온 시네마테크 부산의 ‘월드시네마’ 프로그램은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하여 24편의 매혹적인 작품들을 우리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월드시네마 Ⅷ’는 익히 알려진 거장들의 친숙한 작품 11편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미개봉 영화 7편이 상영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더불어 특별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작품 6편을 집중조명하는 ‘포커스 온 로셀리니’전도 함께 마련될 예정이다.

프랑스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마르셀 레르비에의 1923년작 무성영화 <비인간>의 상영은 실로 기념비적이다. 페르낭 레제 등 당대의 화가와 건축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장식미를 선보이는 이 영화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에 자극받아 큐비즘 등 당시 프랑스의 건축, 회화양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최고의 여가수가 되고자 하는 클레르의 욕망과 비인간성이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한 인상적인 화면들로 투사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빅터 쇠스트롬과 절제된 연기로 무성영화 시대의 여신으로 불리는 릴리언 기쉬가 마지막으로 함께한 작품인 <바람>(1928) 역시 놓치면 후회할 걸작이다. 릴리언 기쉬의 몸짓만으로도 가슴이 저미는, 무섭도록 아름다운 무성영화 미학의 정점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영국식 유머가 눈에 띄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유쾌한 미스터리 호러 <해리의 소동>(1955)도 이번에 첫 상영된다. 잭 트레버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히치콕이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유머와 긴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 공개는 처음인 테렌스 피셔의 <드라큘라의 신부들>(1960)은 질 들뢰즈가 표현주의에서 자연주의로 넘어가는 공포영화의 진보를 보여준다고 절찬했을 만큼 완성도 높은 호러영화다. 영국의 유명한 호러영화 제작사인 해머필름의 작품인 이 영화에서는 반 헬싱 박사로 분장한 피터 쿠싱의 열연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사나이>(1981), 프랑수아 트뤼포의 <신나는 일요일>(1983), 테렌스 데이비스의 <먼 목소리, 조용한 삶>(1988)이 최초로 소개된다. 1981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철의 사나이>는 1977년 <대리석의 사나이>의 속편으로 폴란드 민주화의 역사적 사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녹여내어 사회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걸작이다. 트뤼포의 마지막 작품이기에 더욱 소중한 <신나는 일요일>은 히치콕의 살인 미스터리 외양에 하워드 혹스의 삼각관계를 연상시키는 인물설정으로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유사한 인상을 남긴다. 시간이 아닌 인물의 기억과 감정을 따라가는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은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한편의 시를 감상하는 듯한 깊은 울림을 남긴다. 1920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80년의 세월을 녹여낸 세계걸작영화 순례는 40일 동안 봄의 한가운데에서 영화에 목마른 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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