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초연한 자연을 닮은 관계의 하모니 <세상의 모든 계절>
2011-03-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루스 신)가 살고 있다. 톰은 지질학자이고 제리는 심리상담사다. 노년에 접어든 부부는 서로를 아끼며 함께 산다. 주중에는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농장을 함께 일구며 대략 한 계절에 한두번씩은 가까운 친구와 친지를 불러 조촐하고 화목한 파티를 주최한다. 아내 제리의 회사 동료 한 사람이 파티 때마다 방문하는데 실은 그녀가 좀 불청객이다. 제리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메리(레슬리 맨빌)인데 그녀는 늘 조급하고 엉성하고 불안하여 좌중의 분위기를 망친다. 그런 그녀를 늘 따뜻하게 맞는 톰과 제리지만 어느 가을날 마침내 문제가 생기고야 만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이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불안한 중년을 연기하는 메리 역의 레슬리 맨빌이 가장 조명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노부부를 연기한 짐 브로드벤트와 루스 신 외에 어느 한 배우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멋진 연기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비밀과 거짓말>로 우리에게 이름을 널리 알린, 그리고 최근작 <해피 고 럭키>로 건재함을 입증한 마이크 리의 최근작이다. 감독은 어떤 해결의 구심점이 있는 것으로 삶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삶은 불현듯 사라질 때 사라지고 감당하지 못할 것은 감당하지 못한 채 조금씩 변화하거나 마모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일년을 사계로 나누어 네개의 막으로 영화를 구성한 형식도 그렇거니와 리의 많은 전작에서 촬영을 맡아온 딕 포프의 매우 아름다운 촬영술도 어딘지 초연한 자연을 닮았다. 나직하게 흐르는 호른 연주 같은, 평안하게 사람을 맞이하는 오래된 정원 같은, 그런 영화다. 2010년 전세계 각종 매체의 올해의 영화 순위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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