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전작은 잊자! 17살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2011-03-23
글 : 김용언

‘타임 리프’라는 설정에서 더이상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쓰쓰이 야스타카의 단편 <시간을 달리는 소녀>(1963)가 50여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8번(실사영화, 애니메이션, TV드라마까지)이나 리메이크되면서 매번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무래도 10대 소녀가 주인공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힘껏 달려가는 소녀의 생기야말로 그 매혹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이 소녀 앞에서라면, 심심하기 짝이 없던 타임 리프 로맨스물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잊어도 좋다.

연구실에서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하던 카즈코(야스다 나루미)는 어느 날 잊고 있던 중학생 시절 사진을 받는다. 그날 카즈코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녀의 딸 아카리(나카 리이사)에게 1972년 4월 토요일 중학교 과학실로 가달라고 부탁한다. 카즈코는 그동안 시간여행이 가능한 약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 “후카마치 카즈오에게,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고 전해줘.” 아카리는 영문을 모른 채 엄마의 말을 따르지만 그녀가 떨어진 곳의 시간은 1972년이 아닌 1974년 2월이다. 2년이나 늦게 도착한 아카리는 어떻게든 카즈오를 찾아내야만 한다. 이 여정에 SF 오타쿠 대학생 료타(나카오 아키요시)가 동참한다.

전작들을 본 관객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번엔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등장한다.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1983년작이 쓰쓰이 야스타카 원작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이며 ‘그리운 라벤더향’에 담뿍 젖어 있었다면, 호소다 마모루의 2006년작은 ‘시간 달리기’에 마냥 심취하다가 뒤늦게 타인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소녀의 푸르른 활기로 충만했다. 그리고 다니구치 마사아키의 2010년 버전은 원작 속 카즈오와 마찬가지 상황에 놓인 소녀 아카리를 중심에 놓은 채, 쇼와 시대의 평화로운 노스탤지어를 주된 요소로 끌어들인다. 21세기에서 날아온 소녀가 휴대폰도 컴퓨터도 알지 못하는 고지식한 청년 료타와 사랑에 빠지는 게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지만,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을 보라. 비오는 날 역 앞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료타를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 아카리가 “여기서 뭐 해?”라고 툭 칠 때의 정서, 혹은 고타쓰 아래서 거꾸로 누운 채 서로의 발가락을 쳐다보며 좋아한다는 마음을 살그머니 고백할 때의 정서. 언제든 어디서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려는 소녀의 의지는 더없이 싱그럽다. 내용은 달라도 결말은 여전히 간질간질 안달나게 하며 그때 그 시절, 17살 무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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