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일본에서 가장 뜨거웠던 영화 <고백>이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영화화한 <고백>은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원작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룬, 드문 예로 꼽힐 만하다. 어린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1인칭 고백과 보이스 오버로 이뤄진 이 작품은, 지독하게 많은 말을 들려주지만 그 말은 (의도했던) 상대방에게 가닿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 처연한 느낌은 소설에서보다 훨씬 강렬했다. 차갑고 뜨거운 영화, <고백>을 만든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에게 서면을 통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소감을 말해 달라.
=원작을 빠르게 읽었고, 등장인물 모두가 고독하고 인간적이어서 흥미로웠다. 그 무렵 다른 소설도 많이 읽어봤지만 스토리가 훌륭해도 ‘아 재미있네’ 정도의 느낌만 들고 등장인물이 머릿속에에서 지워져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고백>의 인물들은 머릿속에 계속 살면서, 다음 영화는 그들을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했다. 등장인물이 매력적이었고,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만나고 싶었다.
-주인공들의 1인칭 독백으로 이뤄진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기나긴 독백 혹은 보이스 오버 형식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설과 비교했을 때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원작 전체가 독백으로 이루어졌고,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언어를 지녔다는 게 난점이었지만 난점은 언제나 누구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영상표현으로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난점’은 나에게는 ‘가능성’과 동의어다. 난 항상 영상화하기 어려울 듯한 소재를 선택한다.
-당신의 원색적인 전작들과 청회색에 가까운 색조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오히려 더 화려하다. 측면 혹은 정면 클로즈업으로 쉴새없이 오가는 리듬감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상 스타일은 그 작품의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고, 작품이 다르면 스타일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고백>은 되도록 색을 없애서 차가운 공기감(空氣感)을 표현하는 푸른색과 피의 붉은색만 도드라지도록 컨트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리구치 유코라는 인물의 억눌린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마쓰 다카코와 어떤 상의를 했는지.
=각본을 쓰면서 모리구치 선생은 정말로 어려운 역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 역을 할 사람은 마쓰 다카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쓰 다카코가 주인공을 하는 것이 내가 이 영화를 찍는 필수조건이었다. 만일 그녀가 수락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리구치 선생은 분명한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감정의 움직임은 격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감춘다. 마쓰 다카코라면 그걸 눈 안에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1장에서 모리구치 선생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향해 얘기를 하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고 있는 거다. 가슴속은 요동치고 있을 테지만 냉정한 척한다. 이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는 ‘숨겨진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정말 어려운 연기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연기에 관한 모든 것을 그녀의 판단에 맡겼다. 모리구치 선생이 때때로 드러내는 감정의 흥분을, 눈빛으로 표현하라… 이 어려운 요구를 다카코는 해냈다. 굉장히 테크닉이 뛰어나고, 대단한 배우다.
-원작에서보다 중학생들의 성격이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경우 연기경험은 거의 없었지만 처음부터 슈야, 나오키, 미즈키 같은 모습을 지닌 아이들을 캐스팅했다. 물론 살인을 저지를 만한 아이들은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캐릭터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 한명 한명과 얘기를 나눴다. 만약 실제로 자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각각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 자신만의 생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얘기해서 얻은 결론을 영상에 리얼하게 반영했다. 13살짜리들이 진실이라고 하는 것을 영화 안에 넣고 싶었다.
-영화 속 유코의 마지막 대사가 궁금하다. 소설에 없던 그 대사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따라 유코의 결과는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
=이 영화는 전편이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열심히 말을 한다. 진심을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말이란 것이 항상 진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쓰여져 있는 단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이 부분은 거짓말이 아닌가’라든지 ‘이 인물은 계속 변명을 하고 있네’라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부분을 끝까지 파고들어 추리해나가면서 각본을 집필했다. 정답은 나도 모른다.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고백>을 보게 될 한 사람 한 사람이 등장인물이 표현하는 언어를 의심함으로써 오히려 등장인물의 진실한 감정을 알아내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의 관객에게 통할 수 있는 ‘무성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게 지금 나의 순진무구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