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무기력함에서 나오는 극도의 긴장감과 빼어난 공포의 묘사<줄리아의 눈>
2011-03-30
글 : 김용언

후천성 시력 상실로 고통받는 줄리아(벨렌 루에다)는 같은 증세로 이미 시력을 상실한 쌍둥이 언니 사라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기묘한 분위기의 이웃들,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줄리아의 남편 이삭(루이스 호마르)에 대한 의혹을 떨치지 못하던 중 언니가 죽기 얼마 전 사랑했다는 애인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하지만 누구도 그 애인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남편이 실종되고 줄리아의 시력은 더욱 악화된다.

오드리 헵번 주연작 <어두워질 때까지>의 뒤를 이을 만한 작품이 드디어 나왔다. 시각장애인은 스릴러의 주인공으로서, 지나칠 만큼 완벽하게 무기력한 상태다. 하지만 <줄리아의 눈>은 신체 훼손의 잔인한 순간은 최소화하되, 은유적인 공포를 시각화하는 데에는 최상의 솜씨를 보인다. <The Look of Love>가 흐르는 가운데 동공이 희끄무레해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허공을 향해 절규하는 여인의 오프닝, 잔인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눈먼 자들의 도시’를 경험하는 장면,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해야 하는 긴장감, 물리적인 어둠에 갇힌 이와 영혼의 어둠에 포박된 이 사이의 대결 등은 수없이 소름 돋는 순간을 빚어낸다.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후반 30분 동안 치밀한 복선하에 거듭되는 반전의 리듬감이 빼어나다. 정체 모를 살인범과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구식 사진기의 눈부신 플래시를 활용하는 설정은 명백히 앨프리드 히치콕의 <이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욕심낼 만한 스릴러 수작.

사족 하나.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수도 없이 “훌리아”라고 부르는데, 자막과 제목은 끝까지 ‘줄리아’를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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