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해답은 실종, 공포와는 무관한 '어둠' <베니싱>
2011-03-30
글 : 김도훈

<베니싱>은 전설적인 실제 실종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1585년 5월23일. 영국 식민지인 로어노크섬에서 115명의 정착민이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단서는 나무에 새겨진 ‘크로아톤’(Croaton)이라는 의미없는 단어. <베니싱>에서도 사람들은 ‘크로아톤’이라는 단어를 남기고 사라진다. 인류는 갑자기 초자연적 힘에 의해 옷만 남기고 증발해버린다. 살아남은 TV 리포터 루크(헤이든 크리스텐슨)는 ‘어둠’이 원흉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가발전으로 빛을 내는 7번가의 술집에 몸을 피한다. 그리고 영사기사 폴(존 레귀자모), 물리치료사 로즈마리(탠디 뉴튼), 바텐더의 아들인 제임스(제이콥 라티모어)가 모여든다. 어둠이 조여오자 루크는 다른 도시로 탈출을 꾀한다.

<베니싱>은 단순히 재난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의 원인을 캐나가는 추리스릴러라는 점에서 <해프닝>과 <노잉> <미스트>를 잇는 21세기적 묵시록 영화다. 초반부는 꽤 근사하다. 옷가지만 남은 거리를 홀로 헤매는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이미지는 <28일 후…>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다만, 브래드 앤더슨의 전작 <머시니스트>를 기억하는 (또한 황망한 결론에 넋을 잃은) 관객이라면 종말의 해답을 기다리는 일 따위는 덧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앤더슨은 퍼즐을 푸는 재미보다는 초자연적 현상의 공포 자체를 묘사하는 데 관심이 많다. 문제는 그가 어둠을 공포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데 도무지 재주를 보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소박한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자신은 뭔가 더 근사한 것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허영의 불꽃이 <베니싱>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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