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청풍명월> 등을 연출한 김의석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이 됐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3월30일 김의석 감독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영화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신임 위원장이 영화계 현안을 서둘러 해결해주기를 기대했다. 김의석 신임 위원장도 “먼저 영화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영진위가 영화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정부 들어 영진위 위원장은 김의석 위원장이 세 번째다. 강한섭, 조희문 전임 위원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함에 따라 영진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신임 영진위 위원장을 결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월 초 문화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자리에 적합한 분들은 뒤로 빠지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다”며 인선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선 과정도 예상보다 길어졌다. 영진위가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문화체육관광부에 5인의 인사를 추천한 것이 2월 중순이었고, 이때만 해도 3월 초에는 새 위원장 인선 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 알려졌다. 하지만 인선이 늦어졌고, 추측과 우려 또한 난무했다. 일각에서는 공모에 응한 일부 후보자들이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풍문까지 흘러나오기도 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정책 기조를 빌려 이번 인선을 설명했다. “영진위 전임 위원장들의 적절치 못한 처신 때문에 영진위가 두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현장 영화인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김 위원장이 이전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장 수여 때 김 신임 위원장에게 공정경쟁 환경, 불법 다운로드 근절, 공동제작 활성화, 표준계약서 등 영화계에 산적한 문제들에 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출해달라고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한 영진위 직원은 “새 위원장 임명으로 내부 직원들은 안정을 찾는 분위기”라고 전하면서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 영화계에서 기획개발비 지원, 시나리오 마켓 제도 등의 부활을 요구해왔고 이를 반영한 2011년 진흥사업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석 신임 위원장은 2006년부터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을, 최근까지는 영진위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왔다. 영화계 안에서도 김 위원장의 이력과 경험을 감안할 때 이번 인사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애먼 사람이 된 건 아니긴 한데…”라는 한 영화인의 반응에서 감지되듯이,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단정하기 이르다. 산적한 현안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이같은 유보 반응은 금세 반발로 뒤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한 프로듀서는 “전임 위원장에게서 비롯된 잡음들이 영진위나 문화체육관광부만이 아니라 현 정부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면서 “이번 인선은 어떤 정치색도 띠지 않은 무난한 인사를 조심스럽게 선택한 결과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의석 위원장을 새 조타수로 삼은 영진위가 순항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때 말하는 도움은 지나친 간섭이나 대화없는 독선이 아니다. “현 정부는 영화계의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소수 영화인들의 목소리만 귀담아듣고 독립·예술영화 지원제도를 축소했고, 실효성없는 영화스탭 인건비 지원제도를 만들었다. 과연 김의석 신임 위원장이 협상력을 발휘해 과거 영진위의 이런 실책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한 영화인이 제기한 의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동안 “영진위는 독립된 의결기구”라고 여러 번 말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영진위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침소봉대된” 오해라고도 했다. 이젠 강조가 아니라 직접 증명할 때다. 영화인들은 좌초하지 않는 영진위가 아니라 순항하는 영진위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