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점순이에요.” 고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가는 길>의 기차역 이별 장면,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문숙이 마지막으로 백일섭에게 꺼내는 한마디다. 문숙과 백일섭 그리고 김진규의 연기도 좋았고 배경인 강원도 설원도 아름다웠지만 <삼포가는 길> 하면 이 마지막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구원과 용서’를 짧고 평범한 이 한마디에 함축했다고나 할까. <삼포가는 길>의 유동훈 시나리오작가가 3월30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살.
전남 고창 출신인 유동훈 작가는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 시절 전형적인 문학청년이었다고 한다. 연극영화과였음에도 그는 전공 수업보다 문예창작과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다. 데뷔작도 프랑스의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고전을 각색한 <춘희>(1967)였다. 이후 그는 1970년 한해에만 무려 14편의 작품(이중 한편만 각색이고 나머지는 전부 오리지널이었다!)을 극장에 올리는 등 놀라울 정도의 창작열을 발휘했다. 유동훈 작가가 주력했던 장르는 당대 최고의 액션배우 박노식과 장동휘 등이 단골로 나왔던 액션물이었다. 그런 그가 작가적인 기량을 만개했다고 평가되는 해는 1975년. 그가 작업한 <삼포가는 길>과 최하원 감독의 <마지막 포옹>은 후배 작가들로부터 “문예영화의 최고봉”이라 평가받는다. 또 그는 1982년 <야생마>로 직접 감독 데뷔해 이후 <가슴이 뛰네> 등 두 작품을 연출했고, 영상작가전문교육원과 시나리오뱅크를 설립해 후배 시나리오작가를 양성하고 시나리오작가의 지위 향상에 애써왔다. 그의 시나리오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국의 프랭크 피어슨”이라는 심산 작가의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