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런던] “전쟁 뒤에 남겨진 상처 얘기하고 싶었다”
2011-04-06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켄 로치 감독, 극장과 TV 유료 서비스로 신작 <루트 아이리시> 동시 개봉
<루트 아이리시>

켄 로치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스릴러영화 <루트 아이리시>가 지난 3월18일 영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인 쿠존 메이페어 시네마와 스카이 무비 채널의 PPV 서비스를 통해 개봉했다. 지난해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막강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루트 아이리시>는 퍼거스(마크 우마크)가 이라크에서 사설 경비원으로 함께 일한 동료 프랭키(존 비숍)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리버풀을 찾으며 시작된다. 고향에 돌아온 퍼거스는 친구의 죽음을 설명하는 경비업체 간부들의 이야기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직접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루트 아이리시’는 바그다드의 ‘그린 존’과 바그다드 공항 사이에 놓인 위험한 길을 칭하는 말이다. 영화는 전쟁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피하면서 전쟁이 가져오는 다른 여러 영향들 특히 전쟁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 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해 좋은 평을 얻었다. 영화 개봉 하루 전 켄 로치 감독을 인터뷰했다.

-영화 개봉일이 드디어 정해졌다.
=사실 꽤 제한적인 여건에서 개봉한다. 상업성이 부족한 독립영화들은 극장 개봉에 언제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에서는 미국 상업영화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영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체라고 믿는다. 미국 상업영화만 극장 개봉을 할 수 있는 현재의 영화계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루트 아이리시>를 예술영화전용관뿐 아니라 텔레비전 채널의 PPV 서비스를 통해서도 개봉하기로 한 것인가.
=그렇다. <루트 아이리시>가 확보한 스크린은 영국 전역에서 고작 20개뿐이다. 스카이 무비에 영화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예술영화전용관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실제 전쟁장면이 많이 삽입됐다. 실제 장면을 활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음, 일단 전쟁 자체가 아닌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지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전쟁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남자, 결코 전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중 그가 본 잔혹한 이미지들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해낼지 고민하다 새롭게 촬영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쟁장면을 새롭게 찍었을 경우, 관객은 이것이 재창조된 이미지라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실제 장면이 주는 것만큼 임팩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나 전쟁 중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공포는 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에서 퍼거스가 넬슨(트레버 윌리엄스)의 얼굴에 천을 덮고 물을 부으며 심문하는 장면은 아주 사실적이다.
=나 역시 현실을 잘 반영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러니까 부시와 럼스펠드는 이런 방법의 심문이 단지 심문의 효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기술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와 다르다. 이것은 분명한 고문이다.

-영화적 장치 없이 물고문 장면을 촬영했다고 들었다.
=첫 촬영 때는 트레버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작은 호스를 만들어 그가 숨 쉴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촬영이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트레버가 그냥 해보겠다고 해 5~6시간 만에 촬영을 완료했다. 트레버는 촬영이 끝난 당시에는 괜찮아 보였으나 그로부터 얼마 동안 물고문당하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당신 작품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많이 등장한다. 영화가 이런 문제들에 실질적인 대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영화는 대중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답을 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영화가 어떤 확실한 대안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정치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특정한 정보나 사회·정치적 논쟁을 이슈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제기한 이런 이슈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믿는다.

-미국시장에 진출해보고 싶지는 않나. 미국쪽에서도 분명 어떤 제안이 있었을 것 같다.
=1970년대 초반에는 조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다. 유럽영화들에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아이들을 ‘미국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또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축구 관람도 못하지 않나! (웃음)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나.
=이번 봄부터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 감옥에 가지 않는 대신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번 작품처럼 어둡지 않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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