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는' 류승범과 <수상한 고객들>
2011-04-13
글 : 주성철

지난 2, 3년간 충무로 상업영화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두편의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나홍진의 <추격자>(2008)와 강형철의 <과속스캔들>(2008)이다. 누아르와 소시민 코미디, 그렇게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두편의 영화를 따라 수많은 영화들이 기획됐고 성공과 실패는 거듭됐다. <추격자> 이후 남성적 하드코어 무드의 이른바 ‘한국형 누아르’ 영화들은 나홍진이 <황해>(2010)를 통해 그 스스로 종결지은 느낌이라면, 그보다 너른 스펙트럼을 지닌 일련의 소시민 코미디영화들은 <과속스캔들>의 차태현이 출연한 <헬로우 고스트>(2010)를 비롯해 <사랑이 무서워>나 <위험한 상견례> 등 올해 초까지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수상한 고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들 영화는 공교롭게도 똑같이 여섯 글자 제목이라는 공통점도 있으며, <헬로우 고스트>를 제외하면 김수미가 카메오 출연한다는 점도 똑같다. <수상한 고객들>은 캐릭터 홍보 이미지에 굳이 다크 서클을 그려 넣은 배우들의 모습에서 <헬로우 고스트>를 연상시킨다. N.E.W.가 배급한 <헬로우 고스트>가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슷한 시기 CJ가 배급한 <라스트 갓파더>를 제압한 영화라면, <수상한 고객들>이 마케팅부터 어느 정도 그를 의식한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한때 야구선수였던 배병우(류승범)는 현재 업계 최고의 보험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미 스카우트도 결정되고 연봉 10억원의 꿈에 부풀어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의 자살방조혐의로 인생 최대 위기에 처한 그는 여자친구 혜인(서지혜)과도 이별을 맞고, 과거 고객과의 찜찜한 계약을 떠올리며 그들을 일일이 찾아 나선다. 그들은 2년 전 서로 다른 이유로 향후 거액의 보험금을 기대하며 생명보험에 가입했던 사람들이다. 현재, 가수를 꿈꾸는 소연(윤하)은 사채업자의 눈을 피해 한강 둔치의 버려진 버스에서 남동생(정성하)과 살고 있고, 달동네에 사는 복순(정선경)은 환경미화원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큰딸 진희(채 빈)를 포함해 네 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우고 있고, 혈육이라고는 몸이 좋지 않은 누나 하나뿐인 틱장애 환자 영탁(임주환)은 지하철에서 노숙을 하고있으며,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낸 기러기 아빠 오 부장(박철민)은 힘들게 대리운전으로 생활하고 있다. 보험회사 내에서 이미 내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병우는 그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무조건 그 죽음을 막아야 한다.

원톱 주인공이 여러 인물 사이에서 죽도록 고생한다는 컨셉은 <헬로우 고스트>와 닮았지만 <수상한 고객들>은 그와 달리 특별한 반전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다.차태현보다 속도감있는 제스처와 대사를 탑재한 류승범의 개인기에 좀더 의존하는 인상이 짙다. <헬로우 고스트>의 차태현은 뜻하지 않게 휘말려 귀신들의 소원을 해결해줘야 했지만 <수상한 고객들>의 류승범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가 뿌려놓은 씨앗을 직접 거둬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내달린다. 자신이 보험왕이 되는 데 눈이 멀어 자살 시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보험에 가입시켰기 때문. 복순의 달동네, 영탁의 지하철역, 소연의 한강, 그리고 마땅한 거처를 알 수 없는 대리운전기사 오 부장에 이르기까지 병우는 하루밤 새 서울 전역을 휘젓는 일이 예사다. 그의 그런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고통을 편안히 즐기는 데서 오는 웃음이 <수상한 고객들>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1번가의 기적>(2007)을 쓴 유성협 작가가 각본을 썼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가난한 커플 임창정과 서영희의 에피소드, 그리고 <1번가의 기적>에서 재개발 동네 하층민들의 모습은 자기가 죽어서라도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기려는 <수상한 고객들>의 ‘수상한’ 사람들로 이어졌다. 그렇게 영화는 유성협 작가의 색깔에 기획영화의 안전지향형 설정들이 깊게 배어 있는 느낌이다. 보험에 가입한 그들의 깊은 사연은 뒤로 밀려나 있다. 영화는 나무랄 데 없는 휴먼코미디의 정석이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행복한 만남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기대하게 될 법한 성동일과 박철민의 활용도도 낮은 편이다. 특히 박철민은 연기 변신이라 해도 될 만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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