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담담하게 죽음에 맞서는 엄마라는 존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011-04-20
글 : 이화정

1996년 겨울, MBC 단막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방송됐다. 암선고로 죽음을 앞둔 나문희의 절절한 연기를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시청률 안 나오기로 유명한 노희경 작가가 당시 ‘제2의 김수현’이란 호칭으로 유명세를 탈 정도로 이 드라마가 가진 파장은 엄청났다. 노희경 작가의 녹록지 않은 삶의 대사들이 ‘엄마의 죽음’이라는 아킬레스건과 어우러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드라마가 연출된 결과였다.

민규동 감독은 노희경 작가가 주었던 감동의 파이를 스크린에 다시 불러오려 한다. 가족들 부양에 바쁜 평범한 중년의 주부 인희(배종옥)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김지영)와 늘 피곤을 달고 사는 월급쟁이 의사 남편(김갑수),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큰딸(박하선), 여자친구가 전부인 철없는 막내아들(류덕환)이 그녀가 건사해야 하는 못 말리는 식구들이다. 유일한 남동생 근식(유준상)도 도움이 못 되긴 마찬가지다. 도박에 빠진 근식은 매일 아내(서영희)와 티격태격하며 인희를 힘들게 한다. 일상의 스케치는 여기까지. 오줌소태가 말썽인 줄 알았던 인희가 암선고를 받으면서, 이들 가족의 일상은 180도 달라진다. 담담히 죽음을 준비하는 인희와 함께 가족들도 아픔 속에 그만큼 성장해간다.

드라마가 나온 지 15년이나 지나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간 연극과 책으로 원작을 만나왔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원작의 잔향을 떨치는 건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등에 업고 갈 수밖에 없는 위험수가 다분히 존재하는 시도였다. 죽음을 기점으로 치닫는 감정의 고조, 기승전결은 이미 정해진 싸움. 영화는 원작의 고전적인 엄마, 주부의 모습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영화 속 부부(배종옥-김갑수)의 연령을 드라마 속 부부(나문희-주현)보다 낮췄다. 결과적으로 인물 설정이 가족의 경쾌한 일상을 연출하는 데 일조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인물들을 유머러스하게 포착함으로써 영화는 비슷한 장르의 영화가 과도하게 감정을 끌고가는 우를 탈피할 수 있었다(이 과정에서 유준상-서영희 커플의 몸싸움이 특히 발군이다). 무작정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음에도 영화는 끊임없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민규동 감독의 전작이 주는 도회적인 시선들이 가끔 모나게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영화가 의도했던 감동 지수와 흥행 가능성에는 이견을 제기하기 힘든 작품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