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전영객잔]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2011-04-28
글 : 장병원 (영화평론가)
<고백>의 복합 내레이션은 어떻게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는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지면을 빌려 현대영화의 스토리텔링에 닥친 의미심장한 변화에 대해 말해왔다. ‘21세기 영화의 한 경향’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복합 내레이션의 부상은 주류 할리우드영화와 인디, 작가영화, 예술영화를 망라하는 동시대 영화미학의 국제적 트렌드로 여겨질 정도이다. 영화학자와 평론가, 시네필, 일반 관객에 이르기까지 영화보기 취향에 새로운 개량을 야기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복합 내러티브로부터 대안적 이야기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나카시마 데쓰야의 <고백>은 이같은 이야기의 혁명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관철되고 있는가를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 무신경한 10대 살인자들에게 딸을 잃은 여교사 유코(마쓰 다카코)의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극이라는 표면의 서사를 넘어 <고백>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복잡다단한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현대적 관계의 양상을 복합적 서사의 구축으로 형상화하려는 내레이션 전략이다. 그러나 <고백>의 복잡하고 또한 복합적으로 얽힌 내러티브 구조에서는 괴이한 모순이 발견된다. 이 글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갈래로 나뉘는 멀티 플롯이 떠받치고 있는 내레이션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기보다 복수(複數)의 논리에 따른 서사 단락의 배열을 통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 경위를 살피려 한다.

<고백>은 다중 캐릭터를 앞세운 비선형, 비연대기 구조의 복합 내러티브 영화이다. 이 영화의 서사구조는 제재가 품은 충격성과 기괴함, 그것이 어렵긴 하지만 볼수록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문제를 다룬다는 사실 때문에 미학적 정당성을 얻는다. 영화학자 토마스 엘새서는 이러한 다중 캐릭터의 내면적 삶과 행동의 심리적 배경을 탐구하고 한 사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몰두하는 복합 내러티브 영화들을 ‘심리-게임’(mind-game) 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심리-게임 영화의 주인공들은 정신병리학적 질환이나 기억상실, 자기분열을 통해 종종 믿을 수 없는 내레이터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흔하다. 복수심과 자가당착, 인정욕구에 들뜬 <고백>의 인물들은 바로 이 심리-게임 내레이션의 전형적인 특성을 구현한 존재들이다.

심리-게임 영화

<고백>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심리-게임을 벌인다. 작중 인물들이 자신과 게임을 벌이고 있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 첫 번째이며, 저들의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또는 병리학적인 정신상태를 탐사하기 위해 디자인된 서사의 구축이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이 두 가지 차원을 통해 <고백>은 작중 인물들간에 벌어지는 심리 게임과 그들의 불가해한 심리, 그리고 탐색자로서 관객의 인식과 벌이는 심리 게임을 실행한다. 안시환(<씨네21> 798호 ‘전영객잔’)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고백>이 <라쇼몽>류의 복합 내러티브와 다른 점은 진실을 탐사하기 위해 이야기를 모순에 빠트리기보다 진위가 가려진 사건 뒤에 감춰진 심연의 이야기를 야금야금 드러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부연한다면, <고백>은 각 고백의 주체들에 부여된 서로 다른 서사적 기능에 의해 그들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여느 복합 내레이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플롯을 조직하는 단락들이 지금과 같은 꼴로 줄지어 서게 된 배열의 논리(고백의 순서)이다.

중간중간 인물의 진술이 겹치는 지점들이 있지만, 플롯의 시간상으로 고백의 순서는 유코, 미즈키(하시모토 아이), 시노무라(기무라 요시노), 나오키(후지와라 가오루), 미즈키, 슈야(니시이 유키토)로 이어진다. 물론 이같은 배열의 순서는 내레이션의 요구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진술되는 인물들의 고백을 들을 때마다 이전의 믿음은 깨어지고, 새로운 눈으로 사태를 조망하게 된다. 이를테면 유코의 고백 뒤에 미즈키, 시노무라의 고백 뒤에 나오키, 미즈키의 고백 뒤에 슈야를 배치함으로써 앞의 고백에 대한 뒤집기를 보여주는데, 모든 진술은 객관화할 수 있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결과적으로 한 사건에 연루된 인물에 대한 다각적 재조명은 ‘겹쳐쓰기 내지는 다시쓰기’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인식의 한계를 시험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식의 불가능성을 역설하는 이야기인가? 또는 선의나 악의, 어느 한 가지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행동의 복합적인 측면에 대한 지도 그리기라고 해야 할 것인가? 차분하고 완강한 유코의 고백은 살인자들의 목줄을 죄어오지만 저들의 악행이 단죄되었다고 안도하는 순간 더욱 가공할 만한 악의 얼굴이 고개를 쳐드는데, 반성과 갱생의 다짐 뒤에 또 다른 비수를 감춘 악마의 연쇄적인 재등장은 공포와 탄식으로 숨쉴 틈을 주지 않고 객석을 몰아친다. 아량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인물의 내면, 파국적 상황을 스케치하는 유희적인 이미지 스타일의 대위법은 심리-게임 내러티브의 중요한 특질로 관객을 인도한다. 인식의 혼란과 판단을 호도하는 숨겨진 정보 또는 뒤틀린 플롯과 트릭의 역할이 여기서 강조된다. 그런 점에서 <고백>의 자폭에 가까운 엔딩은 근래에 본 가장 파괴적인 뒤틀기의 사례로 보인다.

내레이션의 구성을 고려할 때 <고백>이 제안하는 심리-게임의 명시적 주제는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처음에 <고백>의 내레이션이 관객과 주고받는 심리 게임은 다음과 같은 도발에 기초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자폐적 소통 네트워크의 폐해, 죄와 갱생의 가능성을 질문하는 이야기로서 하나의 사건이 다중 시점으로 진술되는 형식을 취한 <고백>에서 나카시마 데쓰야는 “세상의 모든 고백이 실은 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된 비호가 아니겠는가”라고 회의한다. 죄책을 모르는 10대 살인자의 무신경을 근원적으로 응징하기란 불가능한데,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 법과 제도의 문제이다.

이처럼 아무리 복합적인 구성 전략을 선택한 이야기라 해도 텍스트를 관통하는 테마는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고백>의 내레이션은 이런 통일성의 요구를 적절히 따르고 있는가? 14살 이하 청소년의 범죄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법이 악행의 도화선이 되는 아이러니, 무구한 표정의 살인자들에게 죄와 갱생의 가능성을 질문하는 것.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고백>에서 자리를 바꾸는 화자들에 의한 겹쳐쓰기 또는 다시쓰기는 간과할 수 없는 차이에 의해 갈리고 있다. 고백의 주체들에게 부여된 상이한 위상은 직간접적인 살인에 관여하는 이들(슈야와 나오키 그리고 유코)의 진술과 오로지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이들(미즈키와 시노무라)의 진술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아주 미묘하게 처리되고 있는 이 차이에 <고백>의 내레이션이 겨냥하는 진정한 주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인자들의 고백이 사건에 대한 재진술 또는 재인식을 제공하는 반면, 미즈키와 시노무라의 고백은 살인자들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로 왜곡된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호구’로 이지메를 당한 전력이 있는 미즈키가 슈야에게 느끼는 동병상련과 “그저 나쁜 친구에게 속아 심부름을 한 것”이라고 아들 나오키를 비호하는 시노무라의 고백은 당치 않은 아전인수이다. 고백의 순서(유코->미즈키->시노무라->나오키->미즈키-> 슈야)는 살인자들의 고백에 의해 그릇된 믿음에 근거한 저들의 진술이 차갑게 부정되도록 배열되어 있다. 결국 나오키와 슈야에 의해 살해당함으로써 그들의 판단은 착오로 입증된다.

쟁점의 복합화라는 함정에 빠지다

그런데 고백하는 자들간의 차이보다 주목할 것은 그들 역시 잠재적으로 죽음 혹은 살인과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희생의 가련함에 묻혀버린 이 이야기의 진짜 주제가 이 지점에서 고개를 쳐든다. <고백>의 실질은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처럼 번지는 살의의 전염에 있다. <고백>에는 드러난 살인과 잠재적인 살인이 공존한다. 이와 관련해 유코의 최초 진술이 부정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살의가 있었지만 죽이지 못한 A(슈야), 살의가 없었지만 죽음에 이르게 한 B(나오키)”라는 유코의 진술은 오류로 밝혀진다. 슈야의 살의는 제 손으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나오키에 의해 실행된다. 악행은 ‘실행’이 아니라 ‘의도’의 문제인 것이다. 악행의 개념을 이렇게 확장한다면 <고백>의 모든 인물들은 살인에 관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즈키는 슈야를 동정하면서 꼬박꼬박 자신을 미즈호(미즈키는 호구)라고 부르는 교사 베르테르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시노무라 역시 가련한 아들을 사지로 내몬 미혼모 선생 유코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강렬한 살의에 휩싸인 인물들인데, 미즈키가 청산가리로 가족을 몰살시킨 10대 여중생 살인자 루나 씨를 추종하는 것이나, 시노무라가 담담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나오키와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 죽음(살인)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내비친다. 그러므로 애당초 유코가 우유 안에 주입한 것은 사쿠라미야의 HIV 바이러스가 아니라 ‘살의의 바이러스’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HIV는 창궐하지 않았지만, 죽음의 릴레이는 계속된다. ‘누군가 죽어도 된다는 생각’의 급속한 전염 앞에서 생명은 무거운가라는 미즈키의 화두는 공허하게 들린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각적 플롯 라인의 복잡한 구성을 택하면서 <고백>은 물리적 죽음만큼이나 만연해 있는 살의의 전염이라는 주제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다. 복합 내러티브 영화에서 대개 인간의 욕망은 덧없고 비이성적이고 불가해한 운명을 순환하지만 <고백>은 거창한 운명론을 설파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백>은 이런 서사의 핵심과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플롯의 잉여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일본사회의 병리현상, 특히 10대들 사이에 번지는 무분별한 인명경시풍조에 경종을 울리려는 제스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적정선에서 타협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영화가 인과응보를 실행하는 의로운 복수의 주체 역시 유희적 가학의 메커니즘에 전염되었음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잠재적 가해자라 할 수 있는 방관자, 처벌의 칼자루를 쥔 신조차 이 악행의 릴레이를 종식시킬 수 없으리라는 비관의 전망으로 치달을 때 <고백>은 인식론적인 문제(세상과 인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회의) 또는 존재론적인 의심(인간의 의식과 심리가 지닌 다중성)을 갈파하는 이야기로 선회한다.

제도와 윤리의 허상에 들이대는 <고백>의 메스는 그리 예리하지 못하다. 유코의 고백만을 놓고 보면 이 방향으로 쏠릴 수 있겠지만, 살인자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주변인들(미즈키와 시노무라)의 고백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악행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맥락화와 타인의 상처를 물어뜯는 10대들의 집단적인 광기에 대한 폭로로 국면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배반하는 고백의 진상에 대한 탐구나 일본사회에 특정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문제, 제도와 법으로 규율되지 않는 악행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이야기의 본질로 보이지 않는다. 쟁점의 전환과 혼용은 결과적으로 복합 내레이션을 통해 도달하려 했던 플롯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유희하는 심리-게임의 덧없음

인간의 경험은 점차 모호해지고 파편적이 되어가므로, 이러한 경험을 영화를 통해 재현하려는 서사는 날로 불투명하고 복잡화될 것이 확실하다. 복합 내러티브의 등장은 복잡화된 현대적 삶의 네트워킹과 인간 경험의 다양성을 포착하려는 미학적 전략이다.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관객과 영화 사이에 설정된 전통적인 관계를 위기에 빠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관음자, 관찰자, 목격자로서 관객의 위상을 부정하는 전지적인 관객의 위치를 위협하는 이러한 시도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는 것이나 지역의 한계를 초월한 복합 내레이션의 수용은 여전히 현대영화의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백>은 혁신적인 복합 내레이션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가해와 피해, 가학과 피학, 지배와 종속이라는 이분화된 기준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이 영화 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어떤 선의도 악에 의해 짓밟힐 수 있으며, 어떤 악의도 정의에 의해 단죄될 수 없는 세계이다. 잠재태와 현실태, 의도와 실행 사이에서 HIV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폭력과 살의의 전염이 제동장치 없는 릴레이를 통해 거대한 순환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만든다. 그러나 플롯의 복잡성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내레이션이 선택하고 조합하고 배열한 사건들은 무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통일적인 논리를 따르면서 엄정한 개연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러나 ‘살의의 전염’이라는 <고백>의 진짜 주제는 그리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플롯의 잉여적 쟁점들에 의해 설 자리를 잃는다. 시청각적인 대위법으로 일관하는 스타일이 복잡성(complexity)을 초월해 유희적으로 흘러가는 것도 문제를 야기한다. 거듭 부정되는 진술에 의해 각 단락 사이의 간격, 기만, 미로 구조 그리고 모호성을 통한 심리-게임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무분별한 쟁점의 남용은 그러한 구조와 관계가 겨냥한 효과를 저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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