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실컷 울고 용서받고 싶었다
2011-04-28
글 : 정한석
사진 : 최성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민규동 감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언론 시사회 직전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그는 호들갑을 떨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제 막 영화가 공개되기 직전의 흥분 상태에 놓인 감독답지 않게 시종일관 또렷하고 편안했다. 그는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앞으로 남은 장기적인 관심사까지 말했다.

-이 영화를 하게 된 특별히 개인적인 계기들이 몇 가지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런 문장들이 나를 크게 건드리는 게 있었다. 그즈음에 친구가 췌장암 선고를 받기도 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남의 이야기로 들을 때는 진부했는데 가깝게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니 현실적으로 믿기지 않았다.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일들이 옛날에 놓쳤던 사람들까지 떠올리게 했다. 첫 영화를 찍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 나는 마치 영화 <집으로…>처럼 단둘이서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영화가 인생보다 중요한 때여서 발인을 할 때에야 뒤늦게 갔는데, 친척들은 곡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눈물이 나질 않았다. 실은 친구에게도 감정이 비슷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잘 가라 이런 인사를 할 기회를 놓쳤고 나중에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내 영화에서 죽음이 형식이나 그릇이나 매개로 다뤄진 적은 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거다. 그렇게 해서 실컷 울고 용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빚을 지고 사는 느낌을 풀어볼 순 없을까 하는. 그래서 언젠가 듣고는 슬픈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던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된 거다. 내가 처음 해보는 헌정의 영화랄까.

-드라마를 보았나.
=드라마가 방영됐던 당시에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전화기를 집에 막 놓고 좋아하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찾았을 때는 다시 보기 서비스가 없었다. 내가 본 드라마 장면은 나문희씨가 어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자료 삼아 보여준 클립 정도다. 그리고 실은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에는 드라마가 궁금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이 다들 이 드라마를 알고 있고 봤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대본을 보니까 실은 나도 모르던 이야기였던 거다. 어떤 공통적인 기시감 같은 게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원작자 노희경씨의 반응은.
=영화는 아마 오늘 오셔서 보실 거다. 시나리오는 보셨다. 시나리오를 꼭 보여주어야 한다고 해서 보여드렸다. 아마 나 말고 전에도 이걸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워낙 원작자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반영되어 있다 보니 훼손될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저는 지문 하나 대사 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신 적도 있다. 각색은 무서운 시험을 치르는 느낌이 늘 있어서 내 시나리오를 보고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좋았다고 하셨고 특히 바뀐 부분들이 좋았다며 더 바꿔도 될 뻔했겠다고 하시더라. 그 다음에는 훨씬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주인공 역을 맡은 나문희와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종옥은 자애로운 여성상에서는 같은 범주에 있어 보이지만 사실 많이 다르다. 배종옥을 캐스팅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뒀나.
=다른 배우인 게 맞다. 나문희가 더 전통적이라고 해야 할까. 더 구수하고 촌스럽거나 훨씬 더 핍박을 많이 받았거나 전쟁통을 통과했을 것 같은 전통적인 이미지. 그게 우리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시작했을 때 다시 그런 고전적 이미지, 보기만 해도 슬픈 엄마라는 배우를 취할 것인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자문했다. 대답은 쉽지 않았다. 나문희 선생님도 어쩌면 그때 그 드라마를 통해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고 한때는 잘살았지만 지금은 조금 기운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엄마, 전통적인 인상에 대한 반사적인 인물이면 어떨까 싶었다.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그건 아마 배종옥씨의 어떤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또박또박한 말투와 목소리, 그러면서도 하이톤의 뱃소리. 그런 면모가 한편으론 고전미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줄리언 무어와 조디 포스터의 혼합형으로 나는 느꼈다. 연기도 그런 톤으로 부탁했고. 뭔가 초가집에서 살아온 ‘사골 어머니’의 느낌과는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종옥씨가 결정되는 순간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이 상당부분 결정됐다.

-인희가 욕실에서 피를 토하고 남편을 끌어안고 우는 장면을 힘들게 찍었다고 들었다. 영화의 첫 번째 정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딱 한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순간, 내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순간, 그 순간이 오면 미칠 듯이 슬플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요구했고. 그런데 한겨울, 좁은 화장실, 그 추운 땅바닥에 앉아서 연기를 하려니 생각만큼 안 나오는 거다. 처음부터 힘들 거라고 예상한 신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시간이 갈수록 눈물이 말라갔다. 이번 영화는 감정을 위해서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았는데 그날은 많이 갔다. 마지막에는 많이 지치니까 배우의 눈과 목소리가 실제로 지쳐서 정말 자연스러워지더라. 그런데도 나는 내가 바라는 데까지 더 가고 싶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찍어야겠구나 생각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배종옥 선배는 다른 날 다시 찍는 게 좋지 않을까, 감독이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도 했다더라. (웃음) 사실은 처음으로 포기를 한 순간이다. 그런데 다시 찍지는 않았다. 의외로 육체적인 건 표현이 잘됐다. 이미지보다 맥락 안에 이 장면을 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보면 어느 정도 표현이 된 거다. 지금은 아쉬움이 없다.

-가족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실은 감독의 장기적인 관심사가 궁금해졌다.
=내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가족이기보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일곱 단계의 갈등에 관한 것이라고 해야 더 가깝다. 가족 이야기는 그동안 내게 일종의 금기 같은 것이었다. 이 영화로 가족의 소중함을 웅변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마음이 없다. 엄마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들여다보고 있기는 한데 그 안에 내가 어떻게 서 있는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게 어떤 경우에는 형벌이기도 하고 구원이기도 할 거다. 다음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전환할 거다.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고 내 안의 어떤 미시적인 정서에 관한 것도 있고. 이 영화는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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