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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나이든 남자의 고집이란
2011-04-28
글 : 심정희 (W Korea 패션에디터)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해리슨 포드가 선보인 양말 패션
<굿모닝 에브리원>의 해리슨 포드(오른쪽).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개그 소품으로나 쓸 법한 선글라스를 몇 십만원이나 주고 사와선 “웃기지 않아? 재밌지?” 하는 남자를 만날 줄 내가 알았나. 어깨선 흐트러지지 말라고 임시로 박아놓은 재킷 어깨 시침실을 “이게 멋이야”라며 몇달째 떼지 않는 남자와 연애란 걸 할 줄 알았더라면 이상한 차림을 한 남자 손잡고 걸어가는 여자들 보며 “취향 특이한 여자들, 차암 많아”라고 중얼대는 짓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혹시라도 웃긴 선글라스 낀 남자랑 나란히 걷는 나를 본 이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짧게나마 변명 한마디 하고 싶다. “저기요, 저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웃기다고 몇번을 이야기해도, 그렇게 입는 게 아니라고 몇번을 가르쳐줘도 들은 척도 안 하는 걸 낸들 어쩌겠나.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계속 이런 식으로 입으면 결별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면 근엄한 표정으로 돌변해 “난 내 (말도 안되는) 옷차림으로 내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세상에 선언하고 있다고!”라 말하며 나를 남자의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여자 취급하는 데 당해낼 재간이 있나 이 말씀.

옷도 옷이지만 나를 정말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나이든 남자의 고집이랄까, 이미 머리와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자기만의 생각(거창하게 말하면 철학)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 남자와의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 중인데 <굿모닝 에브리원>의 해리슨 포드를 보면서 그 고민의 밀도가 한층 높아졌다. 그 영화 속 해리슨 포드가 딱 내 남자친구 같더란 말이지. 회색 슈트에 빨간색 양말을 신지 않나, 보라색 줄무늬 양말을 신지 않나…. 양말이 중요한 시대이긴 해도 지나치게 튀는 양말은 이미 유행의 중심을 떠나 오래전에 변방 찍고 성층권 밖으로까지 밀려난 지 오래건만 마치 “나 이렇게 특별한 사람이야”를 양말로 부르짖는 것 같은 고집쟁이 중년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가슴이 답답하던지….

몇주 전에 이 글을 썼다면 레이첼 맥애덤스를 욕하며 “당신 앵커의 양말부터 갈아신기시지”라고 했겠지만 그건 나이먹을 만큼 먹은 남자의 고집을 경험해보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

아, 이런 남자들은 대체 어떻게 바꿔야 하나? 아시는 분, 제보 주시길. 일단 해리슨 포드에게는 고상하면서도 멋스러운 회색 양말 몇 켤레 선물하고 싶은데 받아주시려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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