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안현진의 미드앤더피플] 지금은 멸종된 낭만남을 위하여
2011-05-06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매드 러브>(Mad Love)의 제이슨 빅스(Jason Biggs)
왼쪽 아래가 제이슨 빅스.

모든 사랑은, 특별하게 시작해서 아프게 끝난다. 사랑의 끝이 날카롭게 베인 듯 아프다가 점차 그 고통에 둔감해지고 잊혀지는 것과 다르게, 그 시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고 윤색되어 동화가 되고 운명이 된다. 그 사랑이 ‘행복’과 ‘현재진행형’을 겸비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2011년 2월14일, 무려 밸런타인데이에 파일럿을 방영한 <CBS>의 새 시트콤 <매드 러브>는 ‘사랑의 시작’으로 시작한,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사무실을 둔 변호사 벤(제이슨 빅스)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케이트(사라 초크)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모자와 휴대폰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만난 이 비둘기 한쌍은 각자의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기로 한다. 그런데 벤의 친구 래리(타일러 라바인)와 케이트의 룸메이트 코니(주디 그리어)는 제대로 통성명하기도 전에 서로 싫어하게 되고, 이 감정은 코믹한 애증으로 변형된다. <매드 러브>에서 케이트와 벤, 코니와 래리는 알콩달콩과 티격태격이라는 셰익스피어 희극 속 남녀관계를 닮았다. 주연 커플은 케이트와 벤, 조연 커플은 코니와 래리인데, 웃음의 주역을 따지면 조연들에게 공훈을 돌려야 할 것 같다. ‘육식남’ 래리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4차원’ 코니는 사실 <매드 러브>의 신스틸러로, 서로 잡아먹을 듯 싫어하지만 언젠가 그 미운 정이 고운 정으로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청자가 발견할 반가운 얼굴은 벤을 연기하는 제이슨 빅스다.

1999년 <아메리칸 파이>로 미국 틴(섹스)코미디의 얼굴이 된 빅스는, 이제 30대가 되어 믿음직한 남자친구를 연기한다. 통통했던 볼살은 사라졌지만 뽀얀 피부와 착한 인상은 고스란히 남아, 뉴욕의 로맨티시스트라는 ‘멸종남’의 역할을 맞춤옷을 입은 듯 잘 소화해낸다. 귓불이 벌게지도록 파이를 사랑하던 고등학생의 모습은 애써 찾으면 찾아질까? <매드 러브>의 벤은 ‘좋은 남자’의 전형이다.

사실 타입캐스팅의 주범은 관객이다. 배우는 변신을 시도하지만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올 때 관객은 알아차리고 환호한다. 제이슨 빅스가 뉴욕의 연극 무대에서 로빈슨 부인을 연모하는 <졸업>의 벤자민을 연기했다지만 관객은 파이를 사랑했던 그 고등학생을 기억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매드 러브>는 영리하고 안전한 선택이었다. “확실한 엔딩이 없다는 점,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와 친해질 시간이 있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카메오 출연이나 단막극을 제외하면 TV시리즈는 처음인 빅스가 <매드 러브>를 선택한 이유다. “나는 로맨티시스트가 맞고, 사랑에 있어서는 아이디얼리스트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 결혼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빅스는 <마이 베프 걸>을 촬영하며 만난 제니 몰렌과 2008년 결혼했다.)

<매드 러브>의 시즌1은 모두 22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파이널 촬영을 마친 주디 그리어에 따르면, “깜짝 놀랄 만한 엔딩이다. (잠시 뜸을 들인 뒤) 촬영이 끝난 뒤 우리 모두 마음이 아팠다.” 내내 웃기다 비장하게 막을 내리는 김병욱식 결말인지도 모른다. 결말이야 아직은 두어달 뒤의 이야기고, 현재 8편까지 방영된 <매드 러브> 속 사랑은 “난 네게 반했어!” 정도의 연애 초창기의 귀여운 광기다. 맹목적이지도 않고, 철없지도 않은, 딱 알맞은 온도의 30대 연애가 달달하게 그려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지만, 그 온기가 오래갈 것 같은 그런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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