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칸영화제 트로피에 내 로고를 새겨주마
2011-05-04
글 : 김도훈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의 이브 생 로랑

-독자 여러분 저는 지금 ‘소스 코드’라는 양자역학 평행이론 시간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선생님이 죽기 8분 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선생님.
=자네는 누군가? YSL(이브 생 로랑) 가방 사러 온 중국인 관광객인가? 여기 말고 샹젤리제 매장으로 가보시게.

-아닙니다 선생님. 직접 만나뵙고 싶어서 찾아온 한국 영화잡지 기잡니다. 아, 근데 샹젤리제 매장에서 이름 대면 디스카운트 좀 안 해주시나요. 누가 선생님 뵈면 뮤즈백 하나만 사달라고 해서….
=내 이름 대고 디스카운트해 달라고 하면 불어로 늘씬하게 욕 얻어듣겠지. 근데 영화잡지 기자가 왜 여기에? 난 이브 몽탕이 아니고 로랑 캉테도 아닌 이브 생 로랑이라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가 한국에 개봉을 했거든요.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제일 궁금했던 게 있어요. 후배 디자이너 톰 포드를 왜 그렇게 싫어하셨어요? 그는 시간날 때마다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이브 생 로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잖아요.
=톰 포드가 일하던 구치그룹이 1999년에 YSL 기성복 라인을 사들인 거 기억하나? 디자이너인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왜 그런 애송이가 내 브랜드를 디자인하냐고. 나는 그런 거 용납 못하네. 절대로.

-그렇긴 하지만 톰 포드가 없었다면 YSL은 파산했을 겁니다. 재능있는 후배가 브랜드를 살려낸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디자이너 질 샌더가 아직 살아 있긴 하지만 질 샌더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건 라프 시몬즈 아닙니까. 브랜드의 전통을 다른 디자이너가 이어가는 건 패션계에서야 흔한 일이고….
=자네 영화기자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영화기자지만 패션도 흥미진진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비교해봄세.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들이 갑자기 장사가 안되기 시작했네. 상업적으로 돈이 안되는 영화들이 몇년간 이어졌기 때문이지. 이제 화가 난 제작사가 스필버그를 해고하고 그의 영화사를 사들인 다음 J. J. 에이브럼스에게 스필버그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감독하게 만들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스필버그가 가만있겠냐고.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긴 합니다만, 그래도 영화와 패션 세계의 법칙이란 게 좀 다른 법이긴 하잖아요.
=다르긴 뭐가 달라. 나는 패션 디자이너 역시 영화감독과 똑같은 예술가라고 생각하네.

-아, 어쩌면 그래서 톰 포드가 <싱글맨>으로 감독 데뷔를 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뭐? 톰 포드가 감독이 됐다고? 안되겠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도 영화를 감독해야겠어!

-어? 어? 선생님은 8분쯤 있다가 돌아가시기로 되어 있어요. 갑자기 이렇게 정신과 힘을 차리시면 곤란합니다. 이브 생 로랑이 죽기 8분 전에 갑자기 정신을 차린 뒤 영화를 연출하고 오스카와 칸영화제를 휩쓰는 평행우주로 떨어지면 저 좀 곤란하다고요 선생니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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