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스크린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다 <레드라인>
2011-05-11
글 : 김도훈

재패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무작정 신뢰하게 되는 제작사들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 건담의 선라이즈, 안노 히데아키의 가이낙스, 디지털 애니메이션 부문의 선두 곤조 스튜디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가 이끄는 프로덕션 I.G다. 뭐가 하나 빠진 것 같다고? 맞다. 매드하우스가 빠졌다. <쥬베이 인풍첩>(1993), <메모리즈 에피소드2 최취병기>(1996), <퍼펙트 블루>(1998), <파프리카>(2006), <썸머워즈>(2009) 등 매드하우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가히 작가주의적이라 할 만한 예술성과 대중적인 장르 취향을 기막히게 버무리는 솜씨로 유명하다. 특히 고(故) 곤 사토시, 호소다 마모루라는 두 대안적 재패니메이션의 거장은 매드하우스와 손잡고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다.

<레드라인>은 매드하우스가 지난 2010년에 내놓은 SF-레이싱-로맨스다. 무대는 반중력 엔진을 이용한 비행차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사륜 자동차가 사라진 미래. 레이싱에 목숨 건 세 남녀가 있다. 최고의 스피드를 내는 데만 목숨을 거는 순정적인 레이서 JP(기무라 다쿠야), JP와 손잡고 일하는 천재 정비사지만 마피아와 결탁해 승부 조작으로 돈을 버는 프리스비(아사노 다다노부), 그리고 JP의 첫사랑이자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자동차 경주만을 사랑해온 소노시(아오이 유우). 그들은 5년에 한번씩 열리는 우주 최고의 레이싱 경주대회 레드라인에 참여한다. 레드라인은 골때리는 경기다. 모든 자동차들은 중화기로 무장할 수 있고, 심지어 개최지는 레드라인을 허락하지 않는 군사 독재국가 로보월드다. 당연히 주인공은 승리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악당을 물리치겠지만, 그 모든 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리는 없지 않겠는가. 이건 결국 매드하우스 영화니까 말이다.

<레드라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목소리로 출연한 기무라 다쿠야, 아사노 다다노부, 아오이 유우다. 기무라와 아사노가 전통적인 자신들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아오이 유우는 난데없을 만큼 섹시하고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도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매드하우스와 톱스타의 이름만이 고고한 건 아니다. <레드라인>에 참여한 스탭들의 면면은 눈이 부시다. <녹차의 맛>의 이시이 가즈히토 감독이 원작을 썼고(그는 타란티노의 <킬빌 VOL.2>에서 이미 애니메이션 파트를 담당한 바 있다), 각본 작업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에노키도 요지와 <공각기동대: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의 사쿠라이 요시키도 참여했다. 세 장인이 머리를 맞대고 쓴 각본은 꽤 엇나가는 재미가 있다. 고전 아니메를 연상시키는 SF적 설정과 가이낙스 스타일의 오타쿠 정신, 매드하우스 특유의 실험정신이 마구잡이로 얽혀 있는데도 각본가들은 별달리 교통정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다. <레드라인>에는 아니메의 신진세력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거침없이 머리를 맞대고 달려보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번득인다.

시각적인 화력에 있어서 <레드라인>은 셀애니메이션의 힘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영화다. 다들 알다시피 일본은 셀애니메이션의 마지노선이다. 양강을 이루고 있는 미국이 셀을 과거의 불구덩이에 쑤셔넣으며 CG애니메이션에 집중하는 동안, 일본은 끝없이 셀애니메이션만의 미학을 발전시켜왔다. 오시이 마모루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그들은 CG로 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CG와 셀애니메이션의 궁합을 궁리하고 있다. 심지어 <레드라인>은 CG의 사용도 거의 없이 무려 7년의 제작기간 동안 수작업으로 탄생한 전통적 셀애니메이션이다. 셀로 만든 자동차 경주장면이 CG애니메이션이나 CG를 잔뜩 버무린 실사영화만큼 박진감 넘칠 리 있겠냐고? 총 10만장의 작화 매수로 만들어진 <레드라인>은 오직 작화와 편집의 힘만으로도 관객석에 엔진을 달고 스크린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져댄다. 셀애니메이션의 불꽃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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