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기자로서 내가 품은 가장 큰 꿈은 이브 생 로랑의 마지막 인터뷰어가 되는 거였다. 은퇴한 생 로랑이 마라케시 별장에 머물던 시절, 나는 언론은 물론이고 몇몇 친구들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마라케시로 간다. 이브 생 로랑 별장 주변을 배회하다 (운좋게) 그 집 가정부와 친해진다. 가끔씩 그녀의 일을 도와준다. 장본 짐도 들어다주고 집 앞도 쓸어주고…. 뛰어난 (짐 드는) 능력을 인정받아 가정부3쯤으로 고용된다(축! 별장 입성!). 이브 생 로랑의 침대 시트를 정리해주며 슬쩍 묻는다. “디오르는 진짜, 왜 죽었대요? 스파하다 심장발작을 일으켰다던데 그게 말이 돼?” 때에 따라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트라페즈 라인이 어떠한 시행착오를 통해 탄생했는지, 오트쿠튀르(최고급 맞춤복) 디자이너로서 처음 기성복 라인을 만들었을 때 들은 가장 치욕적인 말은 무엇이었는지, 죽기 전에 더 하고 싶은 건 없는지, 끝으로 행복했는지….
그러나 어쭙잖은 내 계획은 실행에 옮길 엄두도 내기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생 로랑이 죽고 말았으니까.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는 더없이 아름다운 영화다. 마라케시 별장의 정원도 아름답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미술 작품들도 아름답지만 모로코에서 여름을 보내던 젊은 시절의 생 로랑-베르제 커플이 특히 아름답다. 생 로랑도 피에르 베르제도 그땐 아주 가녀렸고, 얼굴은 젊음의 총기와 사랑의 환희로 반짝반짝 빛났다. 그중에서도 브레통(가로줄무늬 티셔츠)에 통 넓은 청바지를 입은 베르제와 화이트 셔츠에 화이트 진을 매치한 생 로랑은 어찌나 멋지던지 그 사진을 앤티크한 액자에 넣어두고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우리 친척 할아버지 젊은 시절이야. 멋지지?” 뻥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동시에 이 영화는 슬프고 허망하다. 비범한 재능을 타고나면 불행해진다는 삶의 아이러니, 화려하지만 고독하기 그지없는 패션계의 뒷모습을 차갑게 응시하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질질 짰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몇년 전, 진짜로 이브 생 로랑을 만나기 위해 모로코로 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그와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로코에서 휴가 보내며 찍은 사진 보니까 흰색 셔츠에 흰색 진 입고 짙은 색 벨트 맸던데 설마 검은색이었어요?” 하는 식으로…. 그럼 생 로랑도 좀 덜 외롭게 생을 마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번엔 생 로랑이 세상을 떠난 날 울면서 중얼거렸던 혼잣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벼엉신. 울긴 왜 울어? 이브 생 로랑이 네 할아버지라도 되냐?”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를 보는 동안, 나는 생 로랑과 그만큼 가까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