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이 시네마테크 KOFA에서 5월17일(화)부터 6월19일(일)까지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행사를 연다. 말 그대로 ‘발굴’, ‘복원’, ‘초기영화’에 초점을 맞춰 총 43편의 작품을 대거 상영한다.
첫 번째 ‘발굴’ 부문에서 상영될 작품들은 2010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 수집한 영화들이 주다. 테드 코넨트 컬렉션이 우선 눈에 띈다. 테드 코넨트는 1950년대에 이형표 감독과 함께 국제연합한국재건단(약칭 UNKRA)에서 활동했다. 두 번째는 1960년대에 주한 미공보원으로 재직하며 문화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던 험프리 렌지의 소장영화들이다. 세 번째는 김기영 감독의 초기 작품들이다. 지난해 한국영상자료원은 미국 국가기록원에서 마침내 말로만 전해지던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 <죽엄의 상자>(1955)를 발굴 수집했고, 당시에 함께 발굴된 김기영 감독의 문화영화 세편과 함께 <죽엄의 상자>를 이번 상영전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테드 코넨트 컬렉션은 보도기술개량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영화제작실에 관한 홍보물 <웰컴 투 모션 픽쳐스>처럼 대체로 한국전쟁 이후 한국 재건에 관련된 이모저모를 기록한 20여분 내외의 짧은 홍보물들이다. 험프리 렌지 컬렉션은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들이 출연하는 중·단편의 교육 홍보성 극영화가 대부분이다.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역시 김기영 감독의 <죽엄의 상자>. 남파된 빨치산과 그를 둘러싼 극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미공보원 산하 영화제작소 리버티 프로덕션에서 첫 번째로 제작한 장편 극영화이며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이다. 책에서만 읽었던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을 보게 될 기회가 온 셈이다. 다만 사운드가 유실된 상태여서 무성으로 상영할 예정이다. 그 밖에도 김기영 감독의 <나는 트럭이다> <수병의 일기> <사랑의 병실>과 같은 홍보영화도 함께 상영된다. 테드 코넨트 컬렉션 수집경과 보고 및 작품 설명은 6월2일(목)에 열리고 험프리 렌지 컬렉션에 관한 강연은 6월11일(토)에 있다. 김기영 감독을 추억하는 대담은 6월4일(토)에 김수용 감독과 김홍준 감독이 함께한다.
두 번째 ‘복원’ 부문 중 한국영화로는 단연 박노식 감독의 복원작들이 주목을 끈다. 이번 상영전에서 가장 야심차게 내놓은 부문이기도 하다. 박노식은 액션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그는 액션영화감독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이번 상영전에서는 그가 70년대에 연출한 작품들의 복원작인 <육군사관학교> <하얀수염> <왜?> <광녀> <폭력은 없다> <집행유예> <방범대원 용팔이> 7편을 통해 액션영화배우 박노식을 넘어 액션영화감독 박노식의 새롭고 뛰어난 면모를 조명한다는 계획이다. 그 밖에 한국영화 복원작으로는 임권택 감독의 <연화>와 <(속)연화> <맨발의 눈길>을 비롯하여 <서울의 지붕밑> <남과여> <악인의 계곡> <악명> <삼룡이라 불러라> <우리에게 축배를> <마지막 날의 언약> 등이 있고 복원전의 외국 작품으로는 프랑스영화 세편과 대만 뉴웨이브 다섯편이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보내온 프랑스영화 세편은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영화들이다. 장 엡스탱의 <이중의 사랑>은 아름다운 백작 부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의 도박빚을 갚아주기 위해 다른 남자의 품에 가게 되고 다시 세월이 흘러 그녀의 아들이 사랑했던 그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을 계기로 모두가 극적인 상황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오귀스트 제니나, 마르크 알레그레의 <자정의 사랑>은 루이스 브뉘엘의 유명한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배우 피에르 바셰프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고 알랭 카발리에의 <약탈>은 카발리에 영화의 독창적인 영화적 면모를 바탕으로 하되 범죄소설을 원작으로 한 카발리에식 필름 누아르다. 대만 뉴웨이브의 작품들은 비교적 익숙한 <공포분자> <연연풍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애정만세> <음식남녀>인데 그러나 이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상영 기회가 적었던 <공포분자>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주목할 만하다. 박노식의 액션영화와 B급영화에 관해서는 6월5일(일)과 12일(일)에, 대만 뉴웨이브에 관련해서는 5월24일(화)과 26일(목)에 관련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김영진 평론가와 김홍준, 오승욱, 류승완 감독, 주성철 기자 등이 참여한다.
세 번째 ‘초기영화’ 부문에서는 그간 한국에서 접할 수 없었거나 접하기 어려웠던 영화사 초기의 프랑스 및 유럽의 무성영화 목록이 많이 보인다. 범죄물, 코미디, 판타지 장르에 모두 능했으며 <팡토마> <뱀파이어> <쥐덱스>로 프랑스 무성영화에 한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세계영화사에서도 흔치 않은 기록을 남긴 루이 푀이야드의 중·단편들을 이 부문에서 마침내 여러 편 볼 수 있게 됐다. 1907년에서 1911년까지의 작품들은 ‘루이 푀이야드1’에서 1911년에서 1913년까지의 작품들은 ‘루이 푀이야드2’에서 상영한다. 자크 페더가 연출한 무성영화 시기의 블록버스터 <아틀란티스>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극과 모험물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고 마르셀 레르비에가 당대의 예술가 친구들인 페르낭 레제, 말레 스티븐스 등을 동원하여 만든 기괴하면서도 기계적이고 또한 초현실주의적인 영화 <비인간>은 환상적인 세계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반면 장 르누아르의 <성냥팔이 소녀>와 게오르크 W. 파브스트의 <버림받은 자의 일기>는 지금 돌이켜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고 생생한 정서를 전달하고 있으며 나루세 미키오의 무성영화 <너와 헤어져>에서는 훗날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인장과도 같았던 애상과 애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 밖에도 초기영화 부문에서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머더>와 영화사의 한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프리츠 랑의 <M>도 상영한다.
이번 상영전에서 초기영화들은 피아노 연주와 함께 상영되기도 하는데 연주자로는 피아니스트 요하임 베렌즈와 미에 야나시타가 참여한다. 요하임 베렌즈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협박> <베를린 위대한 도시의 교향곡> 등 다수의 무성영화 DVD 음악의 작곡 및 녹음을 한 피아니스트이고 미에 야나시타는 일본 국립필름센터, 이탈리아 포르데노네무성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의 무성영화 작곡 및 연주 경력이 있다.
그간 베일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의 역사와 한국영화의 어떤 생생한 기록의 면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발굴 부문을, 그동안 알고 있었던 영화 혹은 알고 있었던 감독 또는 배우의 새로운 영화적 면모를 목격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복원 부문을, 영화사 초기에 존재했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한여름밤의 꿈처럼 느껴보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초기영화 부문을 주목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