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웃어야 할지 당황스럽지만 후반부엔 사랑스럽다 <헤드>
2011-05-25
글 : 송경원

머리가 없어진 천재 의학자의 시체를 두고 특종을 노리는 기자가 실체를 파헤쳐가는 <헤드>는 그야말로 ‘스릴러’스러운 컨셉의 영화다. 세계적인 천재의학자 김상철(오달수) 박사가 자살을 하고 부검 뒤 이송과정에서 그 머리가 사라진다. 퀵서비스맨 홍제(류덕환)는 아무것도 모르고 김 박사의 머리를 배달하다가 우연히 그 내용물을 보게 되고, 발송자인 장의사 백정(백윤식)에게 납치된다. 한편 홍제의 누나 홍주(박예진)는 사고를 치고 연예부에서 근신 중이지만 헤드(Headline, 특종)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부 열혈기자다. 연예인 가십취재로 지쳐가던 어느 날, 백정에게서 홍제를 살리고 싶으면 그가 숨긴 김 박사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홍주는 특종이 될 만한 사건의 진실과 납치된 동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백정을 추격한다.

‘추격 액션’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그렇고 그런 스릴러영화를 예상했다면 당신은 말 그대로 ‘낚였다’. 이 영화의 방점은 결코 스릴러도 액션도 아니다. 속도감있는 화려하고 멋진 액션은 찾아볼 수도 없고, 관객을 서서히 죄여오는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드>가 사건을 전개시키는 방식은 여지없이 관객의 기대를 배신한다. 납치당한 홍제는 시체 안치실이란 소름끼치는 공간에 감금되지만 시체 해부용 칼이 난무하는 그곳의 섬뜩함은 맹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인해 이내 흐물흐물해진다. 홍주 역시 백정과 끊임없이 추격전을 펼치지만 긴장이 고조될 만하면 무심한 듯 끼어드는 의외의 상황들이 맥을 끊는다. 현실감 넘치는 막무가내 액션 또한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이 실패가 아닌 배신이란 사실이다. 긴장감 넘쳐야 할 상황에서 도리어 관객이 긴장할 수 없도록 집중을 흩뜨려놓는 연출이야말로 이 영화가 시도하는 낚시질의 묘미다. 스릴러영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거스를 수 있는 엇박자의 리듬감이 도리어 그 빈자리에 엉뚱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웃음을 불러온다.

<헤드>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상천외’다. 사건이 흥미롭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추격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흑막과 실체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다. 이 영화의 진정한 원동력은 관객이 당연히 기대하는 장르영화로서의 형식과 그것을 비틀면서 유발되는 웃음에 있다. 이 영화의 추격장면, 액션장면은 전부 현실적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적’이지 않다. 자동차 추격장면에서 서로의 말이 들리지 않아 짜증을 낼 때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다. <헤드>는 이미 관객이 즐기기로 약속되어 있는 형식, 스타일이라는 과잉을 부수며 어떻게 하면 ‘안 멋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재치는 장르영화에 대한, 혹은 습관적인 장르영화 소비에 대한 재미있는 농담이다. 처음에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후반에 이르면 그마저 사랑스러워지는 묘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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