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착한 관계'를 일깨우며 천천히 걷는 법을 말하다 <미안해, 고마워>
2011-05-25
글 : 송경원

소통이란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고 좁은 오솔길이다. 우리는 늘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지만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 힘든 말의 홍수 속에서 쉽게 피로해지고 종종 그 길을 벗어난다. 이야기의 창구가 많아질수록 교감의 깊이와 시간은 얕아지는 것이다. 교감에 필요한 그 마법 같은 찰나의 시간조차 지루해하는 지금, 4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잊고 지내던 ‘착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며 천천히 걷는 법을 일러준다.

송일곤 감독의 <고마워 미안해>는 죽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반려견을 통해 아버지와 딸의 화해 과정을 차분하게 그린 한편의 풍경 같은 영화다. 큰 단독주택에서 반려견 수철이와 단둘이 살고 있는 로봇공학박사 오명철(남명렬)에게 미술관 큐레이터인 딸 수영(김지호)은 집을 처분해 갤러리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추억이 묻어 있는 집을 파는 것이 못내 아쉬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서운한 딸의 갈등의 골이 깊어가던 어느 날, 오 박사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가 남긴 반려견 수철을 시골의 친척에게 맡기려던 수영은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과 편지를 발견한다. 스크린 위에 펼쳐진 조용하고 잔잔한 이미지들은 반려견을 통해 떠나간 아버지 혹은 자신과 화해를 할 수 있었던 수영처럼 관객 스스로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오점균 감독의 <쭈쭈>는 노숙자와 유기견을 연결해주는 ‘노숙인 반려견 분양 프로그램’을 통해 눈높이를 맞추는 공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노숙자 영진(김영민)은 노숙자 패거리에게 협박받아 반려견 쭈쭈를 분양받아온다. 개를 잡아먹으려는 패거리로부터 쭈쭈를 구해낸 영진은 유기견이었던 쭈쭈에게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을 발견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쭈쭈를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동거는 이내 위기에 부딪치지만 영진은 그저 있음으로 자신을 꽉 채워줬던 친구 쭈쭈가 남기고 간 삶의 의지를 잊지 않는다.

박흥식 감독의 <내 동생>은 4편의 영화 중 가장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순수와 소통을 직접 연결시킨다. 6살 소녀 보은이(김수안)는 아버지가 데려온 강아지 보리(조아진)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보은이의 눈에는 보리가 백구가 아닌 진짜 동생으로 보이는데, 보리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것도 잠시, 엄마의 임신과 함께 보리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아역들의 자연스럽고 깜찍한 연기가 돋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만 허락된 마법 같은 소통의 시간을 통해 투명하고 촉촉한 단비를 내리며 관객의 마음마저 적신다.

이 영화의 제작 총괄이기도 한 임순례 감독의 <고양이 키스>는 배고픈 길냥이를 돌보는 혜원(최보광)과 그런 딸이 못마땅한 아버지(전국환)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사투리로 티격태격하는 부녀의 모습이 주는 웃음만큼이나 고양이들의 조심스럽고 사랑스런 몸짓을 보는 재미가 적지 않은 이 에피소드에서 임순례 감독은 그 와중에도 특유의 서늘한 현실 포착을 잊지 않는다.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지만 눈을 맞추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가능한 ‘고양이 키스’처럼 사람과 고양이, 아버지와 딸이 보여주는 교감의 순간을 느릴지라도 확실하게 전달하는 우직한 힘이 돋보인다.

<미안해, 고마워>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는 관계와 성찰의 영화다. 이 영화의 끝에서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보살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동물들을 곁에 둠으로써 그들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에서 동물들의 역할도 지대한데,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에 버금가는 살인 미소를 선보이는 쭈쭈 역의 ‘사랑이’나 듬직하고 의젓한 수철 역의 ‘하늘이’는 배우들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배우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제목만큼이나 ‘착하게’ 만들어진 속이 꽉 찬 이 저예산영화는 제8회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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