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산 호러영화 <줄리아의 눈>의 영국 내 극장 개봉을 하루 앞둔 5월19일 밤 9시. 런던 소호에 자리한 한 극장에서는 VIP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는 한 여인의 자살로 시작한다. 이후 후천성 시력상실증을 앓고 있는 줄리아에게 같은 병으로 고통받던 쌍둥이 언니 사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언니의 지난 행적을 좇던 줄리아는 언니에게 연인이 있었으며 어쩌면 언니가 그에 의해 타살됐을 수도 있음을 직감한다. 줄리아는 자신의 시력이 전부 사라지기 전에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있는 그의 친구들을 비롯해 자신의 남편조차 믿을 수 없게 되면서 줄리아의 진짜 공포는 시작된다.
한국에서도 개봉한 <줄리아의 눈>은 호러영화의 주인공으로 장님이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국 언론은 스페인 호러영화의 신예감독 기옘 모랄레스가 연출한 <줄리아의 눈>을 두고 후천성 시력상실로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캐릭터가 겪게 되는 공포와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느낄 긴장감을 심도 깊게 담아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VIP 시사회가 끝난 밤 11시, 기옘 모랄레스 감독이 시사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눈을 붕대로 가리고 있는 여성. 우리 영화의 메인 포스터이기도 한 이 모습이 이번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처음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을 때 이야기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이 여성이 시력재건수술을 했고, 이 붕대를 정해진 기한보다 먼저 풀게 되면 시력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줄리아의 눈>을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과 비교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줄리아의 눈> 발표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인 것 같다. (웃음) 아마도 같은 제작자와 주연배우가 등장하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영화는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퍼나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른 공포영화들이 비현실적인 존재를 다루며 공포를 조성하려는 경향이 있다면 우리 영화는 눈이 멀어가는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실제적인 공포를 다루고 있다. 이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막막함,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불안함. 나는 이런 감정을 벨렌 루에다가 아주 잘 표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장 무섭게 본 호러영화가 있다면.
=음, 꽤 어려운 질문인데, <샤이닝>이라고 답하고 싶다. 1970년대의 고전적인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샤이닝> 외에 <악마의 씨> <쳐다보지 마라>도 좋아한다. 이 작품들은 직접적으로 공포심을 심어주는 대신 관객이 많은 부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줄리아의 눈>은 공포영화이면서 주인공들 사이의 로맨스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 나는 공포심이 사랑하는 마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공포는 사랑을 잃는 순간 찾아오며,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찾아오는 감정이다. 그래서 공포나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면 두 감정이 함께 떠오른다.
-얼마 전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당신은 주로 커피숍 등 오픈된 공간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다고 하는데, 런던에서는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나.
=지난 1월부터 런던에서 살고 있다. 런던에서도 나는 바르셀로나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매일 아침 커피숍에 가서 신선한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 쓸 이야기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진짜 글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집으로 돌아가 작업을 시작한다.
-요즘 새롭게 시작한 작업이 있는가.
=동료 작가인 오리올 파울로와 함께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다. 현재 두 번째 교정본이 거의 완성된 상태다. 장르는 당연히 스릴러다. 우리는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누구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 같다. 스릴러는 매우 변화무쌍해서 내가 어디에 단서를 놓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를 수 있다. 더이상은 노코멘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