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여섯 빛깔 무지개가 떴다
2011-06-0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6월2일부터 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10회 LGBT영화제 추천작 6편


10주년을 맞은 LGBT영화제가 6월2일(목)부터 8일(수)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LGBT란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가리키는 말로 성소수자를 영화의 주인공과 소재로 삼은 퀴어영화제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배우 소유진이 홍보대사를 맡는 등 영화제 운영 전반에 관한 적극적인 개선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올해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탄탄하다. 총 11개국 장편 15편, 중편 2편, 단편 6편을 상영한다. 개막작 김수현의 <창피해>로 영화제의 문을 연 뒤 폐막작 <마린 스토리>로 문을 닫는다. 상영부문은 ‘핫 핑크 섹션’, ‘레인보우 섹션’, ‘스페셜 섹션: 어게인 퀴어 무비’로 나뉘어 있으며 핫 핑크 섹션에서는 올해 주목할 만한 이슈를 담은 영화들을 특별히 소개하고 레인보우 섹션에서는 강렬한 표현 수위의 영화, 진지한 사회파 영화, 밝고 행복한 영화, 평화와 공동체를 다룬 영화, 청소년 소재의 영화, 슬픈 결말의 영화 등을 상영한다. 스페셜 섹션에서는 크리스토프 오노레의 <러브송>, 나초 G. 베일라의 <산타렐라 패밀리>, 구스 반 산트의 <밀크>, 톰 포드의 <싱글 맨>, 자비에 돌란의 <하트 비트> 등이 상영된다. 주목할 만한 부대행사도 있다. 상영작 중 기존에 출간된 도서와 연관해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퀴어 토크: 책과 만난 동성애’가 열린다. 상영작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와 도서 <하늘을 듣는다>에 관해서는 6월4일 활동가 윤가브리엘과 정욜이, 상영작 <바이올렛의 취향>과 도서 <Gay Culture Holic>에 관해서는 6월6일 박재경 집행위원이 패널로 참여한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가지 색의 무지개, 그 여섯 가지 자기 개성을 가진 LGBT의 대표 상영작 여섯편을 소개한다.


<창피해>

감독 김수현 / 2010년 / 129분 / 컬러 / 픽션 / L
2000년대 한국영화의 가장 뛰어난 데뷔작 중 한편으로 손색이 없을 영화 <귀여워>를 만들었던 김수현,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김수현의 영화는 이상하고 다채로운 결을 지닌 이야기가 다중의 화자를 통해 진행되는 동안 섬세하고 활발한 감정이 영화 전체를 감싸며 작은 세상 하나를 탄생시키는 특징이 있다. <창피해>도 역시 그렇다. 지하철에서 승객의 지갑을 털던 여자 소매치기와 백화점에서 VIP 고객의 비위를 맞추던 여자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라고만 들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특별한 재미가 <창피해>에는 있다. 다중의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와 감정이 번지고 또 번지면서 <창피해>는 여러 장으로 이루어진 우화집처럼 보일 정도다.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여성 동성애를 소재로 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기발한 시각적 상상력과 흥미로운 영화적 리듬은 가장 큰 장점 중 한 부분이다.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We Were Here

감독 데이비드 와이즈만 / 2011년 / 90분 / 컬러 / 다큐 / LGBT
1970년대에 하비 밀크가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차린 다음 혹은 그가 적극적인 게이 인권운동가의 발걸음을 내딛은 다음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가는 게이들의 파라다이스이자 정치·문화적 중심지로 자리잡는다. 구스 반 산트의 유명한 극영화 <밀크>에 이런 이야기가 잘 나와 있다.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에서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그 카스트로 거리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의 팡파르를 추억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1980년대 초에 창궐하여 ‘게이 전염병’으로까지 불렸던 AIDS가 게이 커뮤니티에 미친 영향을 돌아본다. 처음에 그것은 강력한 두려움이었지만 곧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활동가들은 적극적이고 현명한 방편들을 내놓았고 일종의 선구적 의료 대응책을 내놓는다. 영화는 증언을 통해 역사적으로 그 시기를 되돌아보고 의미를 따져 묻는다. 1976년에 들어와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감독 자신의 경험이 동기가 됐다.




<완전한 가족> The Family Complete

감독 이마이즈미 고이치 / 2010년 / 106분 / 컬러 / 픽션 / G
제목은 <완전한 가족>이지만 들여다보면 콩가루 가족이다. 할아버지, 아들, 손주까지 삼대가 한집에 모여 오순도순(?) 살고 있다, 고 말하기에 그들은 서로 서로 섹스를 한다. 며느리와 둘째 손주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이 섹스의 사슬에 얽혀 있다. 이 영화의 망측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접근하는 순간이다. 일명 T-바이러스에 할아버지가 전염되어 있고, 그는 늙지 않는다. 그와 섹스를 나눈 아버지와 나머지 아들들도 늙지 않는다, 고 영화는 대담하게 우긴다. 성기 노출에 각종 섹스장면까지 하드코어 포르노에 영화는 가까이 간다. 일본 핑크영화에서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던 에로 배우 출신이기도 한 감독은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한 할아버지 역을 맡아 열연한다. 야유와 환호를 동시에 받을, 그 때문에라도 흥미로운 막무가내 영화.





<아이즈 와이드 오픈> Eyes Wide Open

감독 하임 타바크만 / 2009년 / 91분 / 컬러 / 픽션 / G
하임 타바크만의 <아이즈 와이드 오픈>은 명징하고 직설적이다. 평생 종교적 율법의 세계 안에서 살던 사람이 자신의 새로운 삶에 눈뜨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며 사는 독실하고 보수적인 유대인 아론은 아이 넷과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가 평생을 반복해온 것은 매일같이 일하고 기도하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다. 그의 생에서 변화란 없을 것 같았지만 어느 날 그의 가게에 점원으로 들어온 스물두살의 청년 에즈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주인공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극의 초반부는 아론이 에즈리를 마음으로부터 밀어내려는 묘사에 치중한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둘의 사랑은 종종 육체적으로도 강렬해진다. 그 장애가 종교이건 법이건 무엇이건 간에 관계를 힘들어하는 연인에 관한 절절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이즈 와이드 오픈>은 한편의 흥미로운 통속극이자 러브스토리다.




<주말> Weekend

감독 앤드루 헤이 / 2011년 / 97분 / 컬러 / 픽션 / G
친구들끼리의 즐거운 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얼마간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주인공 러셀은 어쩌다보니 게이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나고 둘은 하룻밤을 같이 잔다. 인생의 가치관이 상반된 둘은 그럼에도 서로에게 진심으로 호감을 느끼게 되고 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더 깊어진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감독 앤드루 헤이의 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감독 앤드루 헤이는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부터 하모니 코린의 <미스터 론니>에 이르기까지 많은 할리우드영화의 편집자로 일했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단편영화들을 연출해온 미국의 유망한 독립영화 감독이다. 미국의 독립영화 전문지 <인디와이어>는 <주말>을 두고 “만약 모든 영화가 <주말>처럼 대단하기만 하다면 끝내주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백서>

감독 강상우 / 2010년 / 50분 / 컬러 / 픽션 / G
성원은 소년과 단둘이 작은 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 둘은 한눈에 보아도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그런 성원에게 어느 날 입영 통지서가 날아온다. 두 사람은 어지러운 마음에 종종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입영 통지서가 도착하고 성원이 갈등을 느끼며 온 종일 동네를 헤매고 다니던 그날의 장면에서 영화는 비로소 평범한 인상과 끔찍한 인상을 서늘하게 오가며 이 영화의 기이한 분위기를 알린다. <백서>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라는 현대 영화 미학의 정점을 모방한 흔적이 많다고는 해도 그 가능성에 훨씬 더 기대를 걸게 하는 영화다. 미묘한 정서와 호흡을 소름끼치게 전달하는가 하면 배우들에 대한 연기 연출도 섬세하다. <백서>는 2010년 올해의 퀴어영화상을 수상했고 이토록 신묘한 영화로 데뷔한 강상우 감독은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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