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아버지가 밍키를 잡아먹은 그날, 내 유년기는 끝났다." <굿바이 보이>
2011-06-01
글 : 김성훈

“아버지가 밍키를 잡아먹은 그날, 내 유년기는 끝났다.” 아들 진우(연준석)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굿바이 보이>의 첫 장면은 아들이 아버지를 최초로 부정(否定)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아버지(안내상)가 동네 어른들과 함께 애지중지하던 개를 잡아먹는 풍경을 보고 충격을 받은 진우는 솥 안에 구토한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인 셈인데, 이 첫 장면은 <굿바이 보이>가 애증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통해 유년기와 작별을 고하는 자식을 그리는 영화임을 함축한다.

참 밉상투성이인 아버지다. 허구한 날 노름판을 기웃거리다가 빚쟁이들의 독촉 전화로 집구석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나, 민정당원으로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하는 일 없이 방바닥만 긁고 있지 않나, 덕분에(?) 어머니(김소희)는 동네 허름한 술집을 전전해야 하고, 진우는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신문 배달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가족 앞에서 뻔뻔했고, 두 자식 진숙(류현경)과 진우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렇게 미워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어떤 순간으로 인해 가족은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미워도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말하려는 듯 말이다. 1988년 전두환 군부 정권 시절, 한 가족의 풍경이다.

그러나 <굿바이 보이>는 단순히 진우의 가족사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옆집 누나(이채은)가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신문보급소 소장이 휘두른 박철순 사인이 담긴 이만수 배트에 맞고, 폭력이 일상인 동네 불량배와 부딪히면서 진우는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를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흥미로운 건 신파로 빠질 장면이 몇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진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를 경계한다. 극중에 수시로 끼어드는 내레이션은 이미지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와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써 내레이션은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이야기에 위트와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국가와 아버지의 권위에 재치있게 반항하고, 사회 현실을 적절하게 비꼰다. 그 점에서 <굿바이 보이>는 한 가족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은유하는 영화다.

매 신 인물들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이야기를 이끄는 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에 남는다. 안내상은 백수건달 아버지 역을 노련하게 잘 표현했고, 아들 역의 연준석은 눈빛이 빛나는 신예 배우다. 어머니 역의 김소희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간판 여배우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여주인공을 모두 연기한 대학로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반항적인 딸 역을 연기한 류현경도 여고생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굿바이 보이>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연출부 출신이자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 <마법사들>의 조감독 출신인 노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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