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아이들>(1991)이라는 영화가 있다.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 홀로 살던 한 노년의 남자가 그곳 생활을 접고 도시에 살고 있는 자녀들과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손녀는 할아버지를 달가워하지 않고, 딸은 아버지에게 양로원 생활을 추천한다. 노인은 별수없이 양로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는 그곳에서 젊은 시절에 알았던 노년의 여인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차를 훔쳐 타고 양로원을 탈출하고 긴긴 여행길을 거쳐 시골 고향 마을로 돌아간다. 자연의 아이들이란 죽음을 앞두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이 두 노인의 절실한 회귀 본능을 두고 붙여진 말일 것이다. 감독 프레드릭 토르 프레드릭슨은 자신이 흠모하던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천사장 역을 맡았던 배우 브루노 간츠를 이 영화의 후반부에 천사로 출연시켰고 영화는 아이슬란드영화로는 드물게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프레드릭 토르 프레드릭슨의 <마마 고고>의 첫 장면은 어느 영화 시사회장이다. 영화 속 감독(힐미르 스나에르)이 단상에 올라와 작품을 소개하고 영화가 상영되는데, 이 작품이 <자연의 아이들>이다. 영화 속 감독은 상영이 시작되기 전 이 영화를 어머니(크리스보그 켈드)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이 어머니가 <마마 고고>의 주인공인데 그녀는 아들의 시사회가 끝나고 난 뒤에도 집으로 돌아가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를 즐길 정도로 혹은 평생에 걸쳐 모았을 갖가지 유명 미술품들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할 정도로 교양인이며 예술에 조예가 깊다. 그녀는 아주 가끔 표독스럽게 굴지만 대부분은 예의바르고 자애로우며 재치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가 된다.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놓은 걸 잊거나 열쇠 둔 곳을 잊는다. 그녀가 일으키는 갖가지 사고는 별안간 찾아온 알츠하이머병 때문이다. 그즈음 아들은 영화의 평가와 무관하게 흥행에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고 카드는 막히고 차는 차압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가 하는 일은 이 영화가 아카데미영화제 후보에 오르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며 큰소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낸 다음 그녀의 그림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정도다. 그리고 양로원으로 간 어머니는 마침내 <자연의 아이들>의 그들처럼 탈출을 시도한다.
<자연의 아이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프레드릭 토르 프레드릭슨은 다큐와 극을 병행해온 감독답게 자신의 일생에서 실제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작품을 이 영화의 도입부에 놓은 다음 극중 영화감독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무심함, 귀여움, 자존감, 낭만 때로는 표독스러움이라는 감정까지도 넘치거나 모자람없이 적절하게 연기해내는 주연배우 크리스보그 켈드의 연기는 주목할 만하고 그녀를 중심으로 서서히 등장하는 영화의 감성적 말걸기는 더 주목할 만하다. 노년의 이야기는 섬세한 일상에의 관찰로 이어지고 소소한 유머들이 때론 자리를 함께하며 그 일상이 지속되는 동시에 청량한 상상의 나래도 펼쳐진다.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러 주인공의 병증이 좀더 심해질 때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환상장면도 덧붙여진다. <마마 고고>는 이제 막 삶에서 퇴장할 노인의 마지막 쓸쓸한 일상과 감당하지 못할 육체의 스러짐과 그럼에도 생을 아끼고 추억하는 정신적 행복을 부드럽고 따스한 영화적 분위기로 잘 담아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빛나고 드문 우화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려온 프레드릭슨의 영화에서 노인과 질병과 죽음은 희로애락의 마지막 통과의례에 해당할 것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대개의 영화에 등장할 때 그 노인은 심각한 골칫덩어리이거나 연민의 대상이어서 영화는 감정의 통곡으로 채워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마마 고고>는 그러지 않는다. 저물어가는 저 인생을 어루만지고 환송해주는 온화하고도 성찰적인 작별의 인사가 이 영화에는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