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월가의 황금송아지 멈춰 세울 이는 누구인가
2011-06-09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신자유주의의 폐해 원인 파고든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

정치적으로 옳을 때에만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올바르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모든 것은 정치였고, 또 정치는 모든 것이었다. 유럽의 70년대가 그렇다. 지식인층은 선과 악을 넘어 마치 유행과도 같이 앙가주망을 외쳤고, 그들은 윤리와 의무 같은 것들은 벗어던지고자 했다. 들뢰즈의 반도덕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프티부르주아지의 이상주의가 이때 나타난다. 하지만 20년 뒤의 세상은 다시 변화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이 흐름에는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합세한다. 급격한 세계화의 영향으로 90년대 후반부터 대학에 입학한 우리 세대는 정치보다는 ‘경제, 인권, 인도주의 혹은 연대’와 같은 단어들과 더 친숙해졌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자본이 놓여 있다.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 통치, 이것이 지금 우리 세계의 모습이다.

영화 <인사이드 잡>은 2008년 가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그러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조지 부시’다. 그가 연임한 2001년에서 2009년까지를 스토리상의 위기와 절정으로 잡은 뒤, 당대의 패러다임에 다가가기 위해 영화는 81년 레이건의 재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발단은 이렇다. 당시 레이건의 재무장관이었던 메릴린치 CEO 출신의 ‘도널드 리건’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는 당장 효과를 드러낸다. 당시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던 미국 경제는 살아났고, 한동안 이 효과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 혹은 개인주의적 바리새인으로 그려지는 이 신자유주의자들은 ‘예측할 수 있는 리스크는 존재하지 않는다’란 말로 단호하게 자신들의 정책을 옹호하기에만 열중한다. 그로 인해 숨겨진 위험요소가 더 커진다. 현실은 수학이 아니었고, 효율성이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90년대를 거치며 차츰 그 부작용은 나타나는데, 그럼에도 은행들은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게다가 정부는 그를 방치하는 것을 넘어 돕기까지 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의 어둠

대강 이러한 내용을 발판으로 영화는 본론으로 진입한다. 상위 1%만을 위한 정책. 당시의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러한 기이한 이념을 집합해서 사람들의 이념을 전향시키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 다큐물은 이를 비난하고 조롱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신자유주의 정설 발달의 중심이 된 대학과 학자들은 그들이 조합한 거시경제 정책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는 걸 곧 깨닫지만 멈추지 못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더 끔찍한 점은 이 시스템 내에서는 시장이 정치의 산물이 되어버린단 사실이다. 경제를 탈정치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 뒤에는 실제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끔찍한 이면이 숨어 있다. 정부의 규제가 사라지자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졌는지 영화 <인사이드 잡>은 자세히 나열해 보여준다. 그리고 아직 이 신자유주의의 세계 통치는 끝나지 않았다.

MIT의 정치학 박사 출신인 찰스 퍼거슨 감독은 취재 도중 20여명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그중에는 요즘 섹스 스캔들로 전세계의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IMF의 총재 스트로스 칸이 포함돼 있다. 거품 주식이 최대 활기를 띠던 부시의 시대를 언급하면서, 칸은 실질적 문제가 도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마 미국의 자본가들 역시 마음을 바꿀 것이란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미국은 그렇게 변해줄 것인가? 감독은 이를 의심했던 것 같다. 이어지는 현실의 이야기 속에서 영화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은행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큰 은행들은 작은 은행을 합병해 점점 더 커지려고만 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런 상황에서 IMF 수장이 저런 멘트를 던진다면 과연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가능이나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결국 국제무역기구를 통한 세계의 경제 질서 확립도 마찬가지로 어려워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신화는 이 괴이한 거품경제로부터 그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달러의 수치에서 파생한다. 퍼거슨 감독이 도표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는 거대하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도박과도 같이 위태로운 상태이다. 미국 정부도 이를 알지만 묵인한다. 게다가 이 패턴은 마약과도 같아서 한번 길들여지면 멈출 수 없는 유의 것이라 한다. 이 연결고리를 설명하기 위해 퍼거슨은 실제 월가의 고급 매춘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것이 영화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인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상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마치 쿨레쇼프 효과처럼 양복 입은 펀드매니저들의 얼굴에 마약과 매춘이 따라붙고, 그들의 행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거북해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오류, 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빈국에서 부국으로 자본이 흐르는 게 옳다고 볼 수 있는지를, 만일 효율성 측면에서 이가 옳다 치더라도 이때 그들 부국 내의 소득 불균형은 또 어찌 감당할지를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한 사람이 소유한 비행기가 여섯대인 상황, 영화 속 소득 분배 불균형은 너무 커서 와닿지 않는 수준이다. 대체 그 많은 비행기를 어디다 쓰려고 모으는지 영화 속의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출구가 없는 부의 독재

맷 데이먼의 차분한 내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인사이드 잡>은 때로 공포물처럼 오싹한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이 공포감은 극장 안에서보다 극장을 나서면서 더 커지는데, 이유는 그가 다큐멘터리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상대가격 체계는 가난한 자들에게 불리하게 치우쳐져 있다. 가난한 나라가 수출해야 하는 물품이 값싼 반면, 산업화를 위해 수입해야 하는 제품의 가격은 비싸다. 때문에 빈국이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역으로 부자나라가 가난해지는 것도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극대화. 이는 단지 국가간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가을 이명박 정부는 G20의 정상회의를 유치하며 선진경제국 사이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음을 기억하고 축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이 말이 99%의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었단 사실을 영화를 보는 관객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피해를 보는 91%의 나라들, 그리고 그 9%의 국가가 본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상위 20개국의 국민들조차 공평하게 잘살지 못한다면 이 현실을 수긍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일찍이 ‘신자본주의의 열풍에 맞불을 지피면 언젠가 벗어나지 못할 리는 없다는 가정하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이른 바 있다. 상업 이윤이 인간을 지배하는 데에 반대하는 ‘예술가, 작가, 엘리트 학자군’이 움직여야 한다고도 그는 덧붙였다. <인사이드 잡>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컬럼비아대학, NYU,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비롯한 명실상부한 미국의 대표 상아탑들이 자본을 즐기는 데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이가 반드시 전부는 아니란 상상을 하며 움직여야 한다. 이 기형적 시스템의 오류를 타파해야만 다음 세대가 살 수 있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의 슈퍼파워다. 오바마가 아무리 제조업 부흥으로 국가를 재건시키겠다고 외쳐도 그가 그 길의 험난함을 너무 잘 아는 자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이드 잡>은 오바마의 각료들도 부시 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의 파이낸셜 엔지니어들은 유통되는 돈의 형태가 아닌, 마치 가상의 환상과도 같은 꿈의 돈을 뒤쫓고 있다. 한데 이 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적어도 아메리카 대륙의 국민이 목적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그 꿈이 안전하지 않다는 건 이미 2008년에 확인된 바 있다. 감독은 말한다. “구조를 리폼하기 위해서 그들이 만든 빌리언의 돈을 쏟아야 할 때다”라고. 물론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의 이기적인 움직임 속에 자본가들의 야만적 태도가 바뀔 리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월가의 황금송아지는 반짝이며 건재하고, 세계의 경제적 균형은 여전히 망가지는 중이다. 모세가 돌아와 이 아론의 송아지를 깨기까지는 적어도 40일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음악이 멈추었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여전히 그들은 춤추고자 한다. 머릿속의 음악마저 꺼야 할 시간이다. 독재의 모양 중 가장 우스꽝스런 형태의 독재가 부의 독재라 했다. 영화 <인사이드 잡>은 이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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