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남의 창법으로 부른 노래처럼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2011-06-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핑크돌즈는 그저 그런 여성 아이돌 4인조 그룹이다. 은주(함은정), 신지(메이다니), 제니(진세연), 아랑(최아라)은 사이도 서로 좋지 않다. 맏언니 은주는 동생들을 살피려 하지만 동생들은 나이 많고 백댄서 출신인 그녀가 영 못마땅하다. 연습실이 이사를 가던 날 은주는 우연히 거울 뒤편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화이트’라고 쓰여 있는 테이프에는 춤과 노래가 담겨 있다. 그 내용을 보게 된 기획사 대표와 프로듀서는 무언가 성공을 감지한다. 그 안에 있는 춤과 노래를 베껴서 핑크돌즈의 신곡을 완성하고, 곡은 대히트를 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멤버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한명씩 차례로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리더인 은주는 이 사건이 비디오테이프와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고 동료 언니인 순예(황우슬혜)와 함께 원인을 찾아나선다.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는 아이돌 잔혹사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다. 그룹의 메인이 되려는 멤버들의 치열한 자리다툼과 그들을 통째로 이용하려는 기획사가 있다, 는 가정 아래 만들었다. 일단 소재가 매우 독특하다. 아이돌의 반짝이는 이미지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걸 영혼적 이미지로 옮겨내겠다는 야심도 대단하다. 게다가 새로운 시각적 공포 효과가 몇 가지 있고, 공들여 찍은 그 장면들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상투적인 영화 논법은 오랜 시간 자기 창작의 고집을 유지해온 곡사답지 않다. 곡사 영화 특유의 질감으로 사방천지를 도배하리라 기대했던 이들에게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는 기존 충무로의 변주된 얌전한 ‘상황극’ 정도로 보인다. 남의 창법으로 부른 노래처럼 보인다. 상업적 성공이 주 관심사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물론이다. 임재범이 윤복희 노래 <여러분>을 불러 상업적으로 촉망받는 시대다. 하지만 임재범이 자기의 창법을 희생하고 윤복희의 <여러분>을 모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윤복희의 <여러분>을 임재범의 창법으로 완전히 장악한 결과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곡사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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