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도돌이표처럼 서로의 삶을 순환하는 영화 <애정만세>
2011-06-08
글 : 장영엽 (편집장)
<산정호수의 맛>

푸석한 민낯에 보온메리 내복을 껴입은 중년의 ‘아줌마’에게도 사랑은 있다. 스무살을 눈앞에 둔 여고생도 30대 남자와 원조교제가 아닌 사랑을 할 수 있다. 옴니버스영화 <애정만세>는 이처럼 멜로 장르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을 영화의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사랑 이야기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단편제작지원 프로젝트인 ‘숏숏숏’의 2011년 지원작으로 선정됐으며,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부지영 감독과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각각 40분 중편영화의 연출을 맡았다.

부지영 감독의 <산정호수의 맛>은 회사 야유회의 추억을 찾아 산정호수로 떠나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순임(서주희)은 딸의 분홍색 어그 부츠를 신고 짝사랑하는 회사 직원 준영에게 줄 초콜릿을 사러 나간다. 준영을 만나게 될 야간 근무를 기다리며, 순임은 급기야 회사 야유회가 열렸던 산정호수로 떠나 그와의 추억을 되짚으며 야릇한 상상에 빠진다. 양익준 감독의 <미성년>은 우연히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30대 남자 진철(허준석)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그의 곁에서 잠을 깬 민정(류혜영)은 자신이 여고생이라며 때로는 협박조로, 때로는 진철을 구슬리며 그의 곁을 맴돈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사이 진철도 민정에게 정이 들기 시작한다.

<애정만세>는 캐릭터의 활력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영화다.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는 이 없어도, 혹은 그 사랑이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애정만세> 속 인물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마음 두고 싶은’ 공간을 찾아 꿋꿋이 스크린 속을 활보한다. 이들로부터 비롯되는 생동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정호수의 맛>은 순임을 연기하는 연극계의 스타 배우 서주희의 공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꽁꽁 얼어붙어 인적이 드문 겨울의 산정호수에서 돌로 얼음을 깨고, 힘차게 엉덩방아 찧으며, 눈밭에 누워 스스로를 위무하는 순임의 모습에서 40대 여성 특유의 생명력과 원숙함이 느껴진다. <미성년>은 30대 남자와 당돌한 여고생 캐릭터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양익준 감독의 전언처럼 ‘<똥파리>의 다른 버전’으로 읽을 수도 있을 듯하다. 거친 욕설과 직설적인 화법, 남자의 유약한 내면을 보듬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미성년>이 영락없는 양익준표 영화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산정호수의 맛>과 <미성년>은 도돌이표처럼 서로의 삶을 순환하는 영화다. <산정호수의 맛>의 순임은 <미성년>에서 ‘아저씨’와 사귀는 딸에 분노하는 민정의 40대 어머니일 수 있다. 민정은 <산정호수의 맛>에서 어그 부츠를 빌려 신으려는 엄마의 허영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임의 딸과 비슷한 나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서 지켜보면 모두가 사랑이다. <애정만세>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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