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talk]
[Cine talk] 게이들에게 공감받고파
2011-06-14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LGBT영화제 상영작 <완전한 가족>의 이마이즈미 고이치 감독

모두가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제11회 LGBT영화제의 상영작인 <완전한 가족>의 줄거리다. 할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아들, 손자들은 오직 할아버지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미지의 T-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아랫도리를 벗어던진 채 각자의 방식으로 날것의 욕정을 탐하는 이 집안에서 본심을 감추는 말이나 예의범절은 위선에 가깝다. 이 파격의 영화를 만든 이는 일본의 퀴어영화감독이자 핑크영화(성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극장 상영용 성인영화) 배우 이마이즈미 고이치다. 1990년 핑크영화의 거장 사토 히사야스 감독에게 발탁돼 <생일> 등 100여편의 핑크영화에 출연한 그는 <완전한 사랑>을 통해 게이의 시선으로 만든 퀴어핑크물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근친상간, 포르노에 가까운 장면 등 소재와 묘사가 굉장히 파격적이다. <퀴어 보이스 앤드 걸스 온 신칸센> <첫사랑> 등 전작들에 비해 표현 수위를 높인 이유가 궁금하다.
=내 영화의 주제는 언제나 같다. 게이의 연애와 섹스, 그리고 삶이다. 다만 이성애자가 상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 게이들이 보았을 때 공감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같은 테마로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이번에는 포르노라는 방법을 취해본 거다. 하지만 포르노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들이 얼마나 자기답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젊은 게이가 있다면 그냥 그대로도 좋다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심정으로 만든 영화다.

-퀴어영화 감독이기 이전에 당신은 핑크영화 배우로 활동해왔다. 그런 이력과 <완전한 가족>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이가 주인공인 핑크영화에 몇편 출연한 적이 있는데, 배우로서 많이 괴로웠다. 게이 핑크영화라 해서 게이 감독이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핑크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남녀관계를 남남관계로 바꾸는 것이기에 리얼리티가 전혀 없다. 만드는 사람의 호모포비아적인 시선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나고, 게이인 나는 그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리얼리티가 없는 작품에 출연할 바에는 차라리 남녀관계를 다룬 일반 핑크영화에 출연하는 게 훨씬 낫다.

-호모포비아적인 시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마지막에 반드시 주인공이 죽는다는 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이 핑크영화는 거의 없다. 한쪽이 죽어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출가들이 왜 그렇게 결말을 맺는지 계속 생각해봤는데, 게이들의 해피엔딩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 어떤 스트레이트들은 게이가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할 수 없나보다. 차라리 죽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족’을 조명한 이유는 뭔가.
=일본에 <사자에상>이라는 국민 만화가 있다. 패전 뒤인 1946년부터 <아사히신문>에 네컷 만화로 연재돼 큰 인기를 끌었고, 몇 십년 전부터는 일요일마다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해주는 작품이다. 이 만화의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냐면, 할아버지-할머니, 아빠-엄마, 아들과 딸, 그리고 고양이. 이렇게 일반적인 3대 가족의 구성이다. 포르노 버전의 <사자에상>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 말을 일본 국민이 들으면 엄청나게 화를 낼 텐데…. (웃음) 한편으로는 3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드문 현대 일본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탐구해보고 싶기도 했다.

-성기 노출과 정사신이 가장 많은 할아버지 역할을 직접 연기했다.
=누군가에게 연기를 부탁하기가 참 어려운 역할이라 처음부터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또 친구 중 한명이 평소에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45살밖에 안된 나를 왜 할아버지라고 부를까 생각하다가 성장이 멈추는 바이러스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덕분에 SF적인 요소도 영화에 포함됐다.

-퀴어영화를 연출하면서도 여전히 핑크영화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나도 이렇게 핑크영화 배우로 계속 활동하게 될지 몰랐다. 연극 무대에 서다가 1990년 사토 히사야스 감독(<생일> <란포지옥> 연출)의 제의를 받고 처음으로 핑크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체육시간에 바지 갈아입을 때나 수영복 입을 때조차 다른 사람에게 몸을 보여주기 싫어했지만 성에 대해서는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는데, 막상 핑크영화 촬영현장에 가보니 노출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더라. TV나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 부분을 끝까지 보여준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다만, 요즘 퀴어영화를 연출하거나 출연하면서 게이 이미지가 강해지다보니 핑크영화 섭외가 잘 안 들어오는 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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