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인디라마]
[김영진의 인디라마] 빛나는도다, 인물의 기개
2011-06-23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부지영과 양익준 감독의 옴니버스영화 <애정만세>

부지영과 양익준이 연출한 옴니버스영화 <애정만세>는 기개가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본받고 싶거나 선망을 받을 만한 이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물의 기개만으로 영화 전체의 역동적인 기세를 만들어낸다. 이는 현실적인 레벨에서 형상화된 인물이 해낼 수 있는 감정이입의 수준으로는 상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지영의 <산정호수의 맛>에는 좀 있으면 갱년기 장애를 겪을 중년 여성이 나오고, 양익준의 <미성년>에는 삼십대의 숫기없는 남자와 발랑 까진 십대 여고생이 주인공인데,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 이야기에선 예상할 수 있듯이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없다. 사랑이라는 말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남용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선 이들이 사랑 소재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게 신선하다. 이들처럼 살고 있을 우리 대다수는 이런 사랑 이야기에 역설적으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체가 선전하는 로맨스의 낭만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루되 <애정만세>는 그까짓 거짓 환상에 굴하지 않겠다는 기개가 가득하다. 그게 이 영화가 주는 으뜸 매력이었다. ‘그래, 찌질하다 어쩔래’라고 들이대는 기개로 잘나지 않은 사람들을 매력있게 그려낸다.

부지영의 첫 번째 에피소드 <산정호수의 맛>은 주인공이 중년 여성이라는 것만 빼면 사랑이라는 현혹에 감금당한 대다수 사람들의 대상에 대한 환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있다. 감독 부지영은 사랑에의 현혹에 휘둘리지 않을 법한 나이의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상황을 펼치면서 이 현혹은 어느 세대에나 공통된 것임을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꿈자리가 뒤숭숭해 낮잠에서 깨어나는 중년 여성 ‘문’을 보여줄 때 부지영은 단도직입으로 이 여자의 욕망 한가운데로 돌진한다. 이 여자의 내면에는 그것 말고 다른 삶의 가치가 들어설 여유가 별로 없다. 다음 장면에서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고르던 그녀에게 매서운 눈길을 보내는 편의점 점원은 그녀의 딸이다. 두 모녀는 편의점 밖으로 나와 티격태격 싸운다. 딸이 새로 산 구두를 ‘문’이 신었기 때문이다. 딸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산 구두를 엄마가 신은 것에 분개한다. ‘문’은 엄마에게 그게 무슨 말투냐며 나무라지만 그녀에겐 권위가 없다. 가난으로 필경 멍들었을 이들의 삶은 구질구질하고 서로 개별적이다.

<산정호수의 맛> 속 중년 여성의 객기

이쯤 되면 왜 ‘문’이 딸의 새 구두를 신었는지 알게 된다. ‘문’은 꿈자리에서 촉발된 어떤 욕망을 시연할 참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지난해 회사 야유회를 갔던 산정호수에서 30대의 젊은 직원, 자신을 누님이라 부르며 살갑게 대하던 남자와의 체험을 잊지 못해 ‘문’은 다시 산정호수로 가려는 것이다. 사랑이나 사랑 비슷한 감정은 대상에 대한 오해, 환상에서 비롯한다는 오래된 명제를 <산정호수의 맛>은 직설적으로 옮겨놓는다. 그때 함께했던 남자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산정호수 가는 길을 묻는 ‘문’에게 남자의 답변 말투는 뚱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은 자기 환상에 취해 저 혼자 연인놀이를 한다. 오래 걸려 도착했을 산정호수에서 마치 그 남자와 통화하듯이 ‘문’은 걸지 않은 휴대폰으로 음성통화 시연을 한다. 바깥에서 보면 처절하지만 본인은 진지하다. 여행지에서 누군가와 같이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문’은 꾸준히 연애놀이를 한다.

나는 <산정호수의 맛>이 다루는 이 유치한 주인공의 객기, 역할놀이가 흥미로웠다. 그것은 남들의 시선을 충분히 의식하고 치러지는 놀이라는 점에서 결국에는 쓴맛을 보게 될 장난에 불과하다. 자신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욕망은 철저하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환상에 의존함으로써 부서지기 쉬운 액체와 같다. 이것의 물리적인 외화로서 ‘문’은 발목이 삐는 가벼운 사고를 당한다. 몸이 느끼는 통증과 더불어 좋았던 것만은 아닌, 산정호수 야유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님 그것 역시 그녀의 환상을 깨는 또 다른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녀가 함께 발목을 묶고 경주하는 게임에서 넘어진 그녀를 젊은 남자가 차갑게 보는 이미지가 그녀의 뇌리에 떠오른다. 동시에 역시 그녀의 환상인지 실제로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고교생 남녀가 ‘문’의 주변에서 애무하며 즐기는 광경이 나타난다. 이 이미지의 전언은 분명하다. 주인공인 ‘문’에게 사랑이나 욕망은 남들의 것이다.

그렇다고 굴할 수 있나. <산정호수의 맛>의 백미는 마지막 결말이다. 제목 그대로 ‘산정호수의 맛’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이미지가 나온다. ‘문’은 하루 동안의 짧은 환상에서 깨어나지만 화룡점정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그렸던 젊은 남자 동료를 야간조로 출근한 회사에서 마주치고 직접 그 남자의 실체를 목격한다. 그 남자가 별볼일없는 꼬락서니라는 것은 그 남자의 책임은 아니다. 그를 대단한 남자로 착각했던 이는 ‘문’이다. 그 남자는 원래 그렇게 별볼일없는 수컷이었다. 자신의 환상이 무참하게 깨어지는 대단원에서 ‘문’은 흥미로운 행동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게 무엇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문’의 환상이 깨지면서 동시에 그녀의 내면이 강인하게 느껴지는 이 마지막 이미지는 감독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환상없이 살 수 없다. 자기애의 발로이자 확장으로서 사랑의 환상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깨어지게 된다. 환상이 무너졌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초라한 현실을 밟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영화 속의 ‘문’은 한다. 이 행동이 기개가 있는 것이다.

<미성년> 속 강한 여자 여고생 민정

양익준의 <미성년>에서도 비슷한 기개를 볼 수 있다. 여기서 기개는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여주인공에게서 나온다. 음악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진철은 어느 날 아침 자기 스튜디오 침실에 낯선 여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전날 밤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그에게 민정이라는 이름의 이 여자의 존재는 재앙이다. 해장을 하러 시킨 짬뽕을 맛있게 먹는 이 여자는 주춤거리는 진철에게 지난 밤 행동과 다르다고 대놓고 면박을 준다. 관객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이어지는 장면에서 민정이 여고생 복장으로 하교하는 것을 볼 때다. 관객보다 더 놀라는 이는 또다시 스튜디오를 찾아온 여고생 복장의 민정을 보게 된 진철이다. 자기를 혹시 해코지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진철에게 민정은 대놓고 얼러가며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여기서 생물학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양익준의 연출은 이 장면을 요절복통할 희극적 상황으로 만들어놓는다. 음악 프로듀서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진철은 자기 감정표현에 서툰 남자다. 직업적 능력과는 달리 개인적 주변관계에서 소통에 무능한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이다. 진철과 달리 민정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 설령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을지라도 그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정신적 체력이 있다.

<미성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양익준의 에피소드는 진짜 미성년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서 코미디와 비극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기왕의 인터뷰에서 양익준 스스로 피력한 자괴감과는 달리 나는 이 소품영화가 재미있었다. 미성년/여성이라는 기왕의 클리셰를 부숴버리는 쾌감이 있었다. 동시에 성년 남성의 클리셰도 부숴버린다. 이 영화에서 진철은 어른인 척하지 않는다. 그가 어른임을 드러내는 것은 미성년인 민정과 관계를 맺은 데서 오는 불이익을 근심하는 초반 장면뿐이다. 미성년인 민정과 터놓고 소통하는 우여곡절의 관계 끝에 진철도 어른이 된다.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퇴짜를 맞고 실연 상태를 자학하며 그가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풀어놓는 주사는 감정의 조율에 곤란함을 겪는, 그럼으로써 우리가 심야나 새벽에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생물학적 나이의 어른들에게서 드러나는 미성숙한 행동의 전형이지만 동시에 그는 자기 감정의 미성숙을 숨길 만큼 왜곡되지 않은 사람이고 그만큼 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미성년>의 마지막 장면에선 예상했던 해피엔딩이 나오지만 식상하기보다 산뜻한 것은 여주인공의 기개가 상대방에게 이입되는 순간을 거부감없이 전달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대단치 않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 정도의 기개를 품은 매력을 보여주는 한국영화를 그리 많이 본 기억이 없다. 그것도 솔직하게. 이는 앞선 부지영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형식적 자의식 없이도 감독의 정직성만으로 그려낸 인물의 기개야말로 영화의 주요 매력일 수 있다는 것을 <애정만세>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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