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창백한 여신, 케이트 블란쳇
2002-01-09
글 : 박은영

코스튬 드라마 두편의 여주인공이 나란히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지난 1999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기네스 팰트로가 판정승을 거뒀지만, 진정한 트로피의 임자는 <엘리자베스>의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주장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푸른 숲과 황금빛 햇살을 닮은 소녀에서 밀랍인형처럼 창백하고 근엄한 군주로 거듭나는, 진폭 큰 변신에 성공한 그녀에게, 관객이 특히 평단이 열광했다. 그러나 케이트 블란쳇 자신은 덤덤했다. 최고의 여배우라는 할리우드의 찬사를 뒤로 하고, 그녀가 달려간 곳은 연극무대. 영화제가 사랑한 배우라는 프리미엄을 포기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사람들은 경고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Shut up!” 이 한마디를 남기고 표표히 사라졌다는 후문.

누구는 그녀에게서 젊은 시절의 미아 패로를 떠올리고, 누구는 전성기 때의 메릴 스트립을 떠올린다. 그러나 케이트 블란쳇을 여느 배우에 비교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 마린 블루의 서늘한 눈매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영묘한 기운은 그녀를 이 시대의 여왕 또는 여신으로 추앙하게 한다. <엘리자베스>의 깊은 위엄과 <반지의 제왕>의 천상의 신비는 케이트 블란쳇이 아니고는 그렇게 리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미인은 아니지만, 한번 보면 좀처럼 잊기 힘든, 강하고 이색적인 마스크는, 어쩌면 다양한 캐릭터로 뛰어드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출세작이 <엘리자베스>이고 보면, 시대극 전문 배우로 굳어갈 위험도 분명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케이트 블란쳇의 직관과 재능은 한 가지 스펙트럼으로만 분사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뒤에는 <에어 콘트롤>에서 평범한 주부가 됐고, <우는 남자>에서는 밤무대 댄서가 됐으며, <기프트>에서는 카드점을 보는 심령술사로 분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요정의 여왕 갈라드리엘로 돌아왔다. 더도 덜도 없이 ‘딱 좋은’ 캐스팅.

케이트 블란쳇은 종종 영국 아가씨로 오해를 받지만, 실은 호주 출신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트 블란쳇은 조용하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가입하면서 연기의 맛을 알았지만 확신이 부족해 대학에서도 순수미술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배우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깨달은 순간,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고, 국립 드라마 스쿨로 이적했다. 졸업 직후에 <햄릿> <올레나> 등으로 호주 연극계를 평정했고, 몇몇 TV드라마를 거친 뒤, 브루스 베레스퍼드의 <파라다이스 로드>로 스크린 데뷔를 했고, 질리언 암스트롱의 <오스카와 루신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호주 출신의 풋내기 배우는 <엘리자베스>의 캐스팅 단계에서 고운 시선을 받지 못했지만, 결국엔 자신의 모함꾼마저 팬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니콜 키드먼, 멜 깁슨, 제프리 러시, 러셀 크로…. 인구 2천만명의 나라치고는 스타 배출을 정말 많이 하지 않았냐”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면서도, 케이트 블란쳇은 ‘국제적인’ 배우이길 고집한다. 영화에 국적이 무슨 의미며, 동질성과 이질성을 언급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

2001년 지난 한해는 케이트 블란쳇 생애 가장 바쁘고 의미 깊은 시간들이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촬영을 마무리지었고, <밴디트>에서 브루스 윌리스와 호흡을 맞췄으며, <쉬핑 뉴스>에서 악처 변신에 성공했고, <샬롯 그레이>에서 레지스탕스가 됐다. 그 와중에 극작가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그토록 소원하던 아기도 얻었다. 케이트 블란쳇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에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작품과 역할을 다시 물색할 것이라고. “스타덤, 부와 명예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다.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던 감독,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 만한 위상을 지키는 것, 그게 내 바람이다. 나머지는 다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거품을 뺀, 연기의 정수, 삶의 정수를 향한 케이트 블란쳇의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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