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싸이더스에서 독립해 <무사>의 김성수 감독과 NABI픽처스 차린 조민환 대표 (1)
2002-01-09
SF 무기로 상투성을 뒤집어버릴 것

최근의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있기까지 조민환 프로듀서가 기여한 몫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1990년 영화기획정보센터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충무로에 입문한 그는 이화예술극장, 기획시대로 자리를 옮기며 홍보일을 해왔고, 95년 <꼬리치는 남자>를 시작으로 프로듀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뒤, 영화스승인 차승재를 만나 싸이더스의 전신 우노필름에 들어간 그는 <비트> <태양은 없다> <플란다스의 개> <시월애> <무사> 등 선 굵고 개성 넘치는 작품에서 조율사 역할을 했다. 지난 2년 동안 <무사> 프로젝트 하나에 매달렸던 그에게 2002년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그에게 ‘핵우산’ 노릇을 해준 차승재 대표와 싸이더스를 떠나 자신만의 집을 지어 분가했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 살게 될 새 집의 이름은 NABI픽처스. Nature, Art, Beauty, Intelligence의 머리글자를 딴 회사명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자연과 예술, 아름다움과 지성을 동시에 추구해야할 그에게 힘을 실어줄 인물이 있다면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에서 한몸처럼 지내온 김성수 감독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두명의 영화인이 꾸려나갈 새 영화사의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6년 동안 일했던 싸이더스를 떠나 독립하게 됐다.

나는 돈보다는 명예, 즉 이름이 남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형인 것 같다. 영화기획정보센터 다닐 때 1년에 5편, 많게는 7∼8편을 홍보했는데 남는 게 없더라. 당시는 홍보담당의 이름이 크레디트에 찍히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기획시대에서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성공시키고 난 뒤 유인택 대표가 마케팅팀에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겠다고 하더라. 나는 막내도 좋으니 제작부에 보내달라고 했다. 똑같이 고생했는데 왜 내 이름은 마지막에야 올라가는 거냐, 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유 대표는 <꼬리치는 남자>의 제작 총책임을 맡아보라고 했다. 이번 독립도 비슷하다. 승재 형에게 섭섭한 점이 있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걸고 영화할 때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제 내 영화를 선택하고 기획하고 싶다.

차승재 대표가 섭섭한 마음을 보이진 않았나.

잘 이해해줬다. 차 대표는 내 스승이자 친정어머니 같은 느낌이다. 과연 내가 차승재라는 핵우산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우산은 계속 이용할 생각이다. (웃음) 나는 이번 독립이 시집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출가외인이라지만, 딸들이 아쉬울 때면 친정에 가서 손벌리는 것처럼, 나도 비상시에는 싸이더스에 가서 도움을 청할 생각이다.

회사의 지분은 어떻게 구성됐나.

자본금 15억원 중 나와 김성수 감독이 각각 25%, 싸이더스 30%, CJ엔터테인먼트 20%로 이뤄졌다. CJ는 <무사> 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데 대한 고마움 때문에 먼저 투자제안을 했다. 배급권도 일단 CJ에 우선순위를 줄 것이다. 이들과 좋은 영화를 만들고 흥행수익도 지분율대로 나누고 싶다. 재투자분을 빼곤 모두 스탭과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이후 일정은.

1월10일 전후해 고사를 지내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세편 정도다. 우선 김성수 감독이 <리니지>를 끝내고 돌아오는 대로 김 감독, <무사> 연출부 출신인 홍성훈, 필감성 감독이 각각 3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내걸 계획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 감독의 신작도 있다. 일본만화를 골격으로 삼은 SF멜로가 될 전망인데, 약간 바뀔 가능성도 있다. <무사> 조감독 조동오 감독의 데뷔작 <게토>도 준비한다. SF액션물인데, 100년 뒤 혜성충돌로 사막이 돼버린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사막이 주배경이다 보니 중국에서 올 로케이션할 계획이다. 단편 프로젝트는 여름이 지나야 시작될 것이고, 나머지 두편은 연말 또는 내년에 들어갈 것 같다.

이들 작품에 모두 프로듀서로 참여할 계획인가.

되도록이면 현장 프로듀서 역할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최정화 프로듀서가 아직 숙달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현장의 재미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편 프로젝트에서는 김성수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을 계획이다.

김성수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수 형에게 회사의 공동대표를 맡으라고 했는데 끝까지 고사하더라. 그래서 감독으로 명함을 새기기로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공동대표다. 그리고 프로듀서뿐 아니라 <리니지>에서 배워온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바탕으로 테크니컬 슈퍼바이저 역할도 할 것이다. ▶ 싸이더스에서 독립해 <무사>의 김성수 감독과 NABI픽처스 차린 조민환 대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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