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fashion+] 화이트 셔츠의 힘
2011-06-30
글 : 심정희 (W Korea 패션에디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매튜 매커너헤이, 어떻게 매력남으로 변신했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자랑하고 싶은 게 있다. 나, 매튜 매커너헤이 실제로 봤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지난해였나…. 패션쇼를 보러 밀라노에 갔는데 돌체&가바나 패션쇼에 매튜 매커너헤이가 왔더랬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매커너헤이가 쇼장으로 들어선 순간, 카메라맨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바람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객석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왔지만 난 지극히 침착하게 자리를 지켰다, 흠. 솔직히 흥이 별로 안 나더라(내가 이래 봬도 아르마니 쇼에서 디카프리오 봤을 땐 실신 직전까지 갈 뻔한 사람이다, 흠흠). 얼굴의 폭은 지나치게 좁으면서 세로로는 지극히 기름한 게 미술 교과서에서 본 브랑쿠시 작품 같았달까. 매커너헤이의 마음이야 어떻든 내 알 바 아니고 그 순간을 계기로 나는 내 마음속 ‘연애 가능 남자 리스트’에서 조용히, 그러나 아주 깨끗이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근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보고 나서 깨달았다. 매튜 매커너헤이가 눈앞에 있는데도 멍청하게 보내버린 그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남을 거라는 사실을…. 그나저나, 고급 나이트클럽의 정문 앞에 서 있는 매니저처럼 쌔끈하지만 품위라고는 없어 보이던 매커너헤이가 어쩌다 이렇게 지적이고 세련된 매력남으로 변신한 거지? 벽돌 대신 책을 쌓아 만든 집에 기거하며 면벽 수도라도 한 건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그 비결이 화이트 셔츠라고 말한다. 볼품없는 집에 살지만 차는 기사 딸린 링컨 컨티넨털을 탈 만큼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변호사 믹 할러(매튜 매커너헤이)는 법정에 서거나 의뢰인을 만날 때는 늘 검은색에 가까운 네이비 슈트에 새하얀 셔츠를 입는다. 슈트도 슈트지만 특히 그의 셔츠는 막 상자에서 꺼내 입은 것처럼 새하얗고, 손을 대면 스르르 미끄러질 것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실상이야 어떻든 그런 셔츠를 입은 남자는 캐주얼한 옥스퍼드 셔츠를 입은 남자(같은 영화 속 운전사)나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검사), 블루 셔츠를 입은 남자(라이언 필립)보다 훨씬 더 반듯하고 정직하며, 똑똑하고 믿음직해 보인다는 걸 여우 같은 믹 할러는 아는 것이다.

이미지 컨설턴트 존 T. 몰로이는 말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팔고 싶나? 신뢰를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화이트 셔츠를 입어라.” 저널리스트 오치아이 마사카쓰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드레스 셔츠는 부드러워야 한다. 최고급 소재로 만들수록 부드러운 건 당연지사. 그러니 셔츠에 투자하라.” 장담컨대, 믹 할러는 이 두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었을 것이다. 그가 타고 다니는 링컨 차의 트렁크에는 언제라도 갈아입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세탁한 뒤 잘 다리기까지 한 화이트 셔츠가 두장쯤 들어 있을지도 몰라. 뭐? 아닐 것 같다고? 영화에 안 나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고? 나 원 참, ‘보이는 라디오’처럼 ‘보이는 집필실’ 같은 걸 하든가 해야지…(여러분, 저 지금 화이트 셔츠 입고 있습니다, 흠흠).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