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있지만 그걸 실현할 현실은 녹록지 않다. <헤어드레서>의 주인공 카티 쾨니히는 110kg이 넘는 몸무게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침대와 창문을 연결한 긴 줄에 의지해야 하고, 누구보다도 솜씨가 있다고 자신하지만 미용실 사장은 뚱뚱한 체구의 헤어디자이너를 원하지 않는다.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이라고는 딸 하나뿐인데, 딸도 자신의 거대한 체구를 부끄러워한다. 어떻게 보면 다소 씁쓸한 이야기인데, 도리스 되리 감독은 카티의 삶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물론 주인공의 삶을 통해 독일의 남녀차별 문제, 통일이 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서독과 동독의 문화적 차이, 엄마와 사춘기 딸의 관계 등 다양한 함의 역시 함께 담아낸다. <파니 핑크>(1994), <내 남자의 유통기한>(2005),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 등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보내온 도리스 되리 감독의 답변은 영화감독, 소설가, 오페라 연출가, 교수, 아내이자 엄마 등 다양한 그의 직업만큼이나 활기찼다.
-다른 사람의 각본으로 연출한 첫 작품이다.
=유머 감각이 매력적이었다. 체중문제를 비롯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헤어드레서에 관한 소개를 듣자마자 흥미를 느꼈다.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헤어드레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고 동독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달리 볼 수 있을 거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에 딸이 태어났는데, 그때만 해도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독일 남부 뮌헨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다. 촬영하는 동안 아시아, 유럽의 문제가 아닌 동독과 서독 사람들간의 의사소통 문제와 문화의 차이를 더 많이 느꼈다. 그런 차이들이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다른 의견과 문화를 형성하게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체구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한 아줌마의 고충을 다룬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독일 내 불법체류자 문제, 남녀차별, 사춘기 딸과 엄마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을 다룬다.
=독일의 현실을 지나치게 무겁거나 우울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기도 하고. 음울한 영화는 이미 너무 많잖나. 어쨌거나 그런 연출 의도가 적중한 것 같다. 독일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동베를린 주민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주인공인 카티 쾨니히가 한국 아줌마였다면 분명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중 카티는 다이어트에는 관심이 없다.
=촬영 전 인터뷰했던 많은 과체중의 사람들처럼 카티 역시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전부 시도해봤을 것이다. 물론 다이어트에 모조리 실패했을 거다. 작품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직접 110kg의 비만녀로 분장해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전부 나를 무시했다. 어떤 꼬마는 나를 돼지라 불렀고, 식당 웨이터는 노골적으로 비웃었으며, 고급 상점의 점원은 날 손님 취급도 안 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흥미롭고 중요한 체험이었다. 카티가 날마다 힘든 상황에 맞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가져야 했는지도 상상할 수 있었다. 사실 뚱뚱한 사람들의 유쾌함은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한 초인적인 노력이다.
-극중 사춘기 딸은 뚱뚱한 엄마가 싫으면서도 미워하지 못한다. 카티 역시 딸의 시선이 불편하면서도 미안해한다. 시나리오를 쓸 때 당신의 경험이 많이 작용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딸과 격렬하게 싸웠던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동시에 서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 역시 그만큼 깊었다. 문제는 늘 같다. 우린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진리다.
-극중 이런 대사가 있더라. 사람은 숨을 들이마시는 사람과 내쉬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고.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숨을 들이쉬기도(끙끙대기도 하고) 내쉬기도(투덜대기도) 한다. 그런 호흡을 통해 살아 있다는 걸 알린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알라는 석가모니 부처의 충고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영화감독, 소설가, 오페라 연출가, 교수, 아내이자 엄마이다. 요즘 당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건 무엇인가.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들이 나를 풍성하게 해준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한다. 최근 신작 촬영을 막 끝냈다. 아직 어떤 작품인지는 말할 수 없다. 8월에는 오페라 공연의 연출을 맡을 계획이다. 여자들은 다 저글링하듯이 여러 일을 동시에 하지 않나. 알고 보면 우린 모두 저글링에 능숙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