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길고양이들 묘생 주름은 언제 펴질꼬
2011-07-13
글 : 김도훈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개의 눈>의 고양이

-한국에서 길고양이로 살기 힘들지?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기자님도 한국에서 살기 힘들죠?

-그렇지 뭐. 그래도 너네들 처지만 하겠니. 자기 전에 항상 기도하는 게 있단다. 다음 세상에서는 꼭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 너네들의 태생적인 우아함과 느긋함, 예민함이 부럽거든. 하지만 조건이 있어. 한국에서 길고양이로 태어나지는 않게 해달라고 기도 해. 웬만하면 에게해 섬의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
=저도 그 동네 고양이들이 부럽긴 해요. 일단 날씨도 좋고. 비닐봉지 뜯는다고 삽자루 들고 나와서 휘두르는 사람들도 없을 테고 말이에요. 집고양이가 되면 사정은 좀 나아질까요?

-집고양이도 한국에선 안전하지 못하단다. 며칠 전 서울 잠원동의 집고양이 토띠가 죽었어. 경비원들이 잠시 복도에 나와 돌아다니던 토띠를 아파트 13층에서 아래로 집어던진 뒤 숨이 붙어 있던 녀석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쓰레기 봉투에 싸서 버렸대. 그런데 경비원들은 겨우 70만원 벌금형으로 끝났대. 한국에서 고양이의 목숨은 집어던지고 때리고 죽이고 버려도 시원찮은 분리수거 쓰레기 정도인가봐.
=휴, 저는 이제 이골이 났어요. 매달 그런 사건을 다른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전해 듣는걸요. 이미 무지개 다리 건너간 토띠에게는 명복을. 요즘 저는 부산 강서구의 부산시 유기동물 보호소에 사는 길고양이들 소식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어요.

-왜? 거기 길고양이들은 어떤 처지기에?
=1천 마리에 가까운 길고양이와 유기동물들이 그곳에 위탁되어 있어요. 그런데 안락사를 앞둔 동물들에게 아무런 사료도 주지 않아서 어떤 고양이들은 새끼 고양이의 사체까지 뜯어먹으며 생을 이어가고 있어요. 개들 역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죽어가고요. 하지만 보호소쪽은 동물 애호가들의 분양 신청도 받아주지 않고 있어요. 유기동물보호시민모임이 엄격한 관리감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도 오히려 보호소쪽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미안하다. 할 말이 없구나. 정말로 할 말이 없어.
=뭘요. 그래도 잠시나마 햇빛도 보고, 나무 아래서 잠도 늘어지게 한숨 자고, 아주 가끔이지만 먹을 걸 챙겨주는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잠시라도 지구에 살았다가 떠났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스럽게 죽어간 기억은 금방 잊혀지길 기도해야죠. 아직은 이 나라 사람들도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을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믿어요.

-만약 시간이 DVD 플레이어라면 16배속으로 감아버리고 싶구나. 아니, 32배속으로.
=그럼 기자님 팔자주름도 32배속으로 빨리 생기는데요?

-괜찮아. 보톡스로 펴면 돼. 내 팔자 주름과 길고양이들 인생의 주름을 맞바꿔도 괜찮아. 살아라. 다들 끝까지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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