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언 형제를 좋아한다. 96년인가 개판 그 자체였던 학점에 생각만 많던 ‘잉여’ 시절, 학교 앞 비디오방에서 혼자 <파고>를 보고 거기 알바생과 밤새 얘기를 나눈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절제된 연출과 대사는 간결한 기도문처럼 확고하고 우직하게 정의를 구현하니 어쩌니 나불댔던 것 같다. 형제의 오랜 벗, 작곡가 카터 버웰이 스코어를 맡은 <더 브레이브>도 그랬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14살 딸내미가 주인공인 영화는 원작 소설의 대사와 배경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이때 사운드트랙은 원작의 권위(그대로 옮길지어다!)에 맞서는 배수진(이건 내 영화라고!)일 수밖에 없는데, 19세기 찬송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스코어는 그 최종 방어선을 견고하게 지켜낸다. 아일랜드 민요의 흔적이 강한 19세기 미국 찬송가는 얼핏 우울하지만 사실상 신념에 차 있다. 특히 앤서니 존슨 쇼월터의 1888년 곡 <Leaning on the Everlasting Arms>는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서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당찬 소녀는 한팔을 잃고 어른이 되었고, 그 사이 믿음직한 보안관은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의 모험도, 서부시대도, 모두 미국 역사의 한장이 되어 ‘영원의 품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안타깝고 쓸쓸하지만 어쨌든 삶은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