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아날로그 냄새 나는 액션 원했다
2011-07-27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퀵> 조범구 감독 인터뷰

-윤제균 감독과는 어떤 인연인가.
=윤제균 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알던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해운대>의 김휘 작가, JK필름의 길영민 이사인데 그중 김휘 작가와 과거 단편 <장마>(1996)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어울려 친한 형들이 됐다. 사실 내가 <뚝방전설> 이후 JK필름의 전신인 두사부필름에서 작업할 거라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무슨 그런 쌈마이 영화사로 가냐” 하는 얘기도 했었다. (웃음) 하지만 어차피 영화란 공동작업이니까 ‘무조건 사람만 보고 간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딱히 흔들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JK필름에서 영화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JK필름하고 하게 됐어?” “나도 좀 소개시켜줘” 그런다. (웃음)

-<퀵>은 믿기 힘든 도심 촬영들이 많다.
=주무대는 도로 그 자체인데 촬영 허가가 진짜 힘들다. 제작부가 정말 대단했다. 무려 7개 기관과 접촉해서 명동을 섭외했고, 수원 영통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를 3일간 통제하고 추격전을 찍을 수 있었다. 수원, 화성 주민들의 불편이 컸을 거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탱크 로리 폭파장면은 가산디지털단지 앞에서 찍었는데 오토바이가 거의 100여대 질주했다. 그중 한대만 쓰러져도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를 준비하며 참조한 영화들은.
=애초의 컨셉인 스피드와 폭발, 그에 관련된 영화들은 다 찾아본 것 같다. <스피드>(1994)나 <택시>(1998)는 물론 조셉 칸의 <토크>(2004) 같은 바이크 영화도 봤다. <토크> 같은 영화는 너무 나가서 참조하기는 좀 애매했고. 컴퓨터그래픽을 맡은 디지털아이디어의 정성진 본부장, 오세영 무술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날로그 냄새가 나는 액션이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러다보니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화가 잘 이뤄진 영화가 오히려 <용형호제>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같은 옛날 성룡 영화더라. 뚫고 무너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는 장면들이 굉장히 리얼하다. 그러면서 결코 무겁지 않고 흥겨운 액션영화의 리듬이 있다. 그렇게 컨셉을 맞춰 잡고 갔다.

-라스트에 NG장면 모둠이 있는 것도 성룡 영화를 연상시킨다.
=사실 <퀵>이 감동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재미나 새로운 볼거리뿐만 아니라 감동이 더해져야 300만명 이상을 넘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웃음) 성룡 영화를 보면 즐거운 가운데 엔딩의 NG장면을 통해 숙연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 우리도 메이킹 장면을 부지런히 찍었는데, 나중에 쓰려고 보니 메이킹 찍는 친구가 자기의 몸을 너무 소중히 아낀 나머지 멀리서 줌으로 당겨 촬영한 장면이 많더라. (웃음) 누가 다치고 그러면 확 다가가서 표정을 담아내고 해야 하는데 그런 장면들이 없어 환장하겠더라. 아무튼 NG장면에서 병원에 입원하신 분은 박병렬 무술팀장이다. 김인권 대역을 하는 가운데 오토바이 옥상 점프도 하고 도기캠 운전도 직접 했다. 송병철 팀장도 이민기 대역을 하면서 새끼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 두 사람의 공헌도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위험한 장면들이 많다보니 안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할 수밖에 없었겠다.
=감독으로서 육체의 상처를 입을 일은 없지만 마음의 상처는 크다. (웃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안전장치는 철저하게 했다. 관객이 액션장면을 보면서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실제로 위험하게 찍고 있는 상황이다. 멋진 스턴트 장면은 결국 가장 위험한 장면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안전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런 장면을 담아내기를 원하고, 스턴트맨도 다치는 걸 각오하고서라도 해내길 원한다. 아무리 컴퓨터그래픽으로 매만진다고 해도 결국 부술 건 부수고 쓰러질 땐 쓰러지고 폭발시킬 건 폭발시켜야 한다. 아슬아슬하지만 또한 안전하게, 그렇게 전혀 안 어울리는 두 단어의 조화가 중요했다.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액션과 코미디의 조화라는 것도 비슷한 문제였다. 가령 김인권의 개인기가 도드라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걸 좀 눌러서 조화롭게, 연출자로서 윤제균 형과의 대화도 조화롭게, <퀵>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되뇌인 단어가 바로 조화였다.

-그렇게 변수가 많고 조화를 중시해야 하는 현장에서의 연출 컨셉이나 원칙은 무엇이었나.
=단편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영화를 철저히 ‘놀이’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배우에게 요구도 잘 안 한다. ‘인정하고 동정받자’는 게 내 삶의 좌우명이다. (웃음) 내가 코미디를 못하는 걸 인정하고 그걸 수행하려면 욕심내지 말고 코미디 잘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게 <퀵>을 만드는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윤제균 형이 감독으로서 선배고 코미디를 잘하니까 의지한 거다. 게다가 연출자로서 선배라 변수가 수도 없이 발생할 이런 영화에 큰 힘이 됐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현장에 좀 자주 나와달라 부탁했다. 마찬가지로 액션에 관해서는 오세영 무술감독에게 많은 빚을 졌고. <뚝방전설> 이후 5년이 지났으니 워낙 환경이 바뀌어서 CG가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이제 잘 모른다. 지금의 내가 주관적인 인식을 담은 예술영화를 하는 게 아니니 그렇게 모두의 힘을 빌려 영화를 만들었다.

-제작자 윤제균에게 요구해서 관철시킨 것들이 있나.
=세 가지였다. 먼저 대형사고 가능성이 높은 게 명동이어서 무조건 세트로 가자고 했고 주요 장면들을 그렇게 찍었다. 두 번째로 주인공 3명이 가벼우니까 반대쪽 범죄 라인은 유명 배우로 가자고 했다. 서사가 없는 영화에 인물들이 너무 가벼우면 드라마가 힘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세 번째는 김인권이 이끄는 화양리 레이더스팀 친구들을 모두 스턴트맨으로 채우자는 거였다. 연출부가 이미 오토바이를 좀 타는 단역배우들로 다 섭외했던데 철저히 안전에 대한 방어감각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럴 때 액션의 힘도 다르다. 그런 굵직한 3개 요구조건을 모두 다 들어줬다. 게다가 얼마 전 기자시사회가 끝나고 사운드 작업을 다시 했는데, 그게 추가로 2천만원 정도가 더 드는 일이었다. 사실 그게 대세에는 별 지장도 없고 일반 관객은 알아채지 못하는 부분들이다. 그래도 감독으로서는 완성도에 대한 욕심 때문에 요구를 한 건데 그것도 들어줬다. 사실 전체 제작비도 조금 오버한 게 사실인데 또 믿어준 거다. 그건 아무래도 제작자가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제작비 초과는 물론 2천만원 조달까지, 워낙 협상의 귀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에는 한번 그 설득의 비결이 뭐냐고 물은 적 있다. 그러자 대뜸 형이 “뭔 설득을 하냐, 비굴하게 다 맞춰주고 비는 거지”라고 하더라. (웃음) 전에도 특수효과 작업 때문에 증액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알았어, 내가 빌어볼게” 그러면서 다 들어줬다. 옆에서 전화하는 거 보고 있으면 정말 비굴하다. 그렇게 자신은 비굴하더라도 감독이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게 해준다.

-촬영 여건으로 인해 바뀐 설정이나 로케이션이 있나.
=인천 월미도 모노레일 장면이다. 오토바이가 모노레일 위로 질주하는 장면인데, 결국 여러 이유로 철거가 결정되면서 촬영하지 못했다. 기차라면 뭔가 찍어놓고 CG를 통해 좀 변형을 하면 되는데 그건 원본이 딱 하나밖에 없는 거라 실제 촬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 사정으로 촬영을 못한 게 아니니 그런 문제만 없었다면 무리없이 촬영했을 것이라 아쉽다.

-이런 추격전 영화에서 유례없이 인질에게 1박2일의 휴식시간을 주는 악당이 등장한다. (웃음)
=너무 달리게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을왕리에서 조개구이도 먹고 다소 유치하지만 회상장면도 나오고 숨어 있던 사랑도 다시 싹트면서 정서적으로 숨돌릴 수 있는 틈을 주고 싶었다. 애초 시나리오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어차피 즐겁게 가는 영화니까 기왕이면 평화로운 바다가 배경이었으면 했고, 조개구이에 술 한잔 하다보면 아쉬운 소리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면서 인간적인 끈끈함을 주고 싶었다. 안 좋게 보면 ‘진상’이지만 아롬이가 한번쯤 춘심이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질주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퀵>에서 그런 여유나 여백도 좀 느껴줬으면 한다. 실제로 나도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서 1년 반쯤 전에 경포해수욕장 근처로 이사했다. 주변에 커피 잘하는 집들이 많아 좋다. (웃음)

-평소 상업영화의 모델로 생각하는 영화들이 있나.
=픽사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한다. 동화적이고 상업적이면서도 대철학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삶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다.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만들고 싶은 대중영화의 모델이 바로 픽사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영화들이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한국에서 그렇게 잘되는 건 아니더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돈> 같은 영화들이다. 그런 건 나중에 50살 넘었을 때 내 돈으로 하려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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