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시네마톡]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2011-07-28
정리 : 신두영
사진 : 최성열
<씨네21>과 CJ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일곱 번째 시네마톡, <인 어 베러 월드>

“아카데미 작품상이 흥행과 연결되던 시대는 지났지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에 대한 관객의 지지는 여전하다.” 씨너스AT9 정상진 대표의 말이다.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과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동시에 석권한 <인 어 베러 월드>의 관객 동원을 보면 정 대표의 말에 동의할 수 있다. 덴마크 감독 수잔 비에르가 연출한 <인 어 베러 월드>는 20일 만에 관객 3만명을 돌파했다. 전국의 스크린을 장악한 <트랜스포머3>와 경쟁해서 입소문만으로 이뤄낸 결과다. <인 어 베러 월드>의 어떤 매력이 의미있는 숫자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을까. 장대비가 쏟아진 7월14일 오후 7시 대학로CGV에서 열린 ‘시네마톡’에 참석한 관객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시네마톡은 매달 CGV 무비꼴라쥬에서 개봉하는 영화 한편을 선정해 <씨네21> 기자와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관객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대화를 나누는 행사다. 이날의 진행은 <씨네21> 장영엽 기자가 맡았다.

<인 어 베러 월드>는 복수와 폭력에 관한 영화다. 엘리아스는 학교 친구들에게 폭력과 따돌림을 당한다. 전학생 크리스티안은 괴롭힘을 당하는 엘리아스를 돕는다. 그 방식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엘리아스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잃은 슬픔을 가족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풀어내려 한다. 이런 크리스티안에 이끌려 온순했던 엘리아스도 복수하는 법을 배운다. 한편, 영화는 엘리아스의 아버지인 안톤의 이야기도 동시에 담아낸다.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는 안톤은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성별을 알아맞히는 도박을 하는 아프리카의 반군지도자가 행하는 잔인한 폭력을 목격한다. 안톤은 의사로서의 도덕적 책무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인 어 베러 월드>는 용서와 복수라는 선택 앞에 무력한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다루는 영화다.

등장인물을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이창동식’ 설정

“수잔 비에르 감독은 덴마크에서는 유명한 흥행 감독이다. 덴마크 인구가 500만명인데 100만명 정도가 <인 어 베러 월드>를 봤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치면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장영엽 기자는 수잔 비에르 감독에 대한 짧은 소개로 시네마톡의 문을 열였다. 김영진 평론가는 게스트 없이 진행된 시네마톡이 오랜만이라 조금은 낯설어했다. “지난 몇달간 한국영화 시네마톡을 하면서 감독과 배우들이 나왔기 때문에 말을 많이 안 했는데 오늘 본격적인 영화 해설을 하려니 숙쓰럽다. (웃음)” 가벼운 농담으로 운을 뗐지만 김영진 평론가는 곧 진지하게 영화 해설을 이어갔다. “<인 어 베러 월드>는 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작은 것부터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주제를 정교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어떻게 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세계와 비슷한 점도 있다. 등장인물을 막다른 길로 몰아서 테스트하는 느낌인데 밸런스를 잘 잡았다.” 김영진 평론가는 장영엽 기자의 말을 받아 수잔 비에르 감독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수잔 비에르 감독은 한때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주창한 도그마 운동에 가담했다가 곧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는 다른 길을 갔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개인적으로 수잔 비에르 감독을 싫어하고 어떤 면에서는 질투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유대인인 수잔 비에르에 대한 농담을 하려다가 그 유명한 나치 발언을 하게 됐다.”

<인 어 베러 월드>가 다루는 폭력이라는 주제가 묵직하기 때문에 시네마톡은 진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영진 평론가는 “<인 어 베러 월드>가 보여주는 폭력이 미디어를 통해 보던 잔혹한 폭력을 일상화시키고, 문명화된 서구에서 어린이들이 행하는 폭력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고정관념을 깨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심리학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각자가 마음속에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스위스의 장 피아제라는 심리학자는 대부분의 인간이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ccomodation)의 상태에서 동화를 택한다고 한다. 세상이 왜곡돼 있을 때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힘이 센 쪽으로 동화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절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서는 안톤과 엘리아스 부자가 제일 용감하다. 끝까지 회의하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인 어 베러 월드> 시네마톡에서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타인의 불행에 얼마나 귀기울였나요

<인 어 베러 월드>의 캐스팅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안톤 역을 맡은 미카엘 페르스브란트는 <인 어 베러 월드>에서의 진지한 태도와는 달리 사실은 터프가이 역을 많이 맡은 배우다. 장영엽 기자에 따르면 수잔 비에르 감독이 이 터프가이를 왜 캐스팅했냐는 질문에 “너무 평화롭게 생긴 사람을 캐스팅하면 무슨 재미냐”고 답했다고 한다. 김영진 평론가도 마카엘 페르스브란트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미카엘 페르스브란트는 엄청난 바람둥이다. 자유연애주의자여서 여자들과 사귀면 그때마다 문신을 새기는데 지금은 더이상 문신을 새길 데가 없다고 한다. (웃음) <인 어 베러 월드>에 나온 미카엘 페르스브란트를 보면 외도라는 실수를 만회하고 가정을 위해서 대가를 치르는 사려 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잔 비에르 감독이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캐스팅한 것 같다. 매력적인 배우인 건 분명하다.”

장영엽 기자는 다시 영화의 본질인 폭력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에서 배를 가르는 폭력과 안톤이 정비공 라스에게 뺨을 맞는 장면은 폭력의 수위가 다르다. 수잔 비에르 감독이 이 두 장면을 감정적으로 비슷하게 표현하는 점이 놀라웠다.” 수잔 비에르 감독이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덧붙여 장영엽 기자는 김영진 평론가에게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비교해서 수잔 비에르 감독이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어떤지 질문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 김영진 평론가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크라이스트>를 끝까지 못 봤다. 보기보다 심약하다”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두 감독 중 김영진 평론가가 선호하는 쪽은 수잔 비에르였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려고 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세상의 진실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비해 수잔 비에르는 적절한 밸런스를 맞춘다. 개인적으로는 수잔 비에르쪽이 더 좋다.” 수잔 비에로 감독의 스타일과 관련해서 김영진 평론가는 자동차 정비공인 라스라는 마초가 안톤의 뺨을 마구 때리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폭력이 나에게 당면한 문제라며 어떨까라는 질문을 계속 떠올렸다.” 또 실제로 자신이 일상에서 목격한 폭력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인간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네마톡을 지켜본 관객의 질문도 온통 폭력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 관객은 “주차장 관리인과의 다툼 속에서 느낀 폭력의 경험을 영화를 보는 동안 떠올렸다”면서 자신의 영화 감상을 다른 관객과 공유했다. 또 다른 관객은 일상적인 폭력에 무관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진중공업 사태 등 사회적인 폭력에 대해서도 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진 평론가는 마지막 관객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며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대화가 오갔던 <인 어 베러 월드> 시네마톡의 문을 닫았다. “어쩌면 우리를 회의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건 예술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의미있다.” <인 어 베러 월드>는 장대비를 뚫고 시네마톡에 참석한 관객에게 복수와 용서, 정의라는 진지한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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