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난해하다는 편견은 버려요
2011-08-03
글 : 송경원
제11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8월4일부터 11일간 서울 홍대 인근에서

우리는 아직 이것을 부를 적확한 표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새로움과 탈경계라는 두 기둥에 의지하여 그 실체를 가늠해볼 뿐이다. 때문에 ‘뉴미디어 아트’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끊임없는 변화에의 움직임을 다소나마 정의하려 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기존 고정된 매체에 갇히지 않는 새로움, 그리고 대중과의 예술적 소통, ‘뉴미디어 아트’는 단순히 말하자면 새로운(new) 매체의(media) 예술(art)을 탐색하는 모든 움직임의 합집합이다. 여기엔 모든 매체의 딱딱한 정의와 경계를 허무는 힘이 있다. 영상시, 리듬영화, 싱글채널비디오아트, 비주얼 퍼포먼스, 비디오 액티비즘, 실험다큐멘터리, 추상애니메이션 등 기존 장르의 획일화된 틀에 담아낼 수 없는 ‘대안영상’을 꾸준히 선보였던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Seoul International NewMedia Festival, 이하 Nemaf)이 올해로 11회를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2000년 제1회 인디비디오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05년에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로 타이틀과 규모를 확장한 이 행사는 지난해부터 ‘Nemaf’라는 이름의 국제행사로 다시 한번 전환해 넓어진 소통과 변화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 ‘Nemaf 2011’은 지난 10년을 돌아봄과 동시에 ‘새로운 상상! 새로운 쓰임!’이라는 슬로건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는 대안영상의 힘을 선보일 예정이다. 테크놀로지를 넘어선, 지속 가능한 뉴미디어의 새로운 상상과 새로운 쓰임에 대한 제안은 ‘Nemaf 2011’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아트가 지닌 가능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른바 ‘뉴미디어’라 칭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영상은 주로 기존 장르에 저항하고 그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작동해왔지만, 본질은 결국 미디어-소통-사람의 이야기에 있다. 이제 ‘Nemaf 2011’은 단지 기술적인 진보와 실험만이 아닌 매체가 담아낼 수 있는 본질, 즉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축제에서는 크게 영화제, 전시회, 특별행사로 나눠 다양한 내용의 작품을 선보인다. ‘다양하게, 새롭게, 보다 쉽게’를 모토로 하는 이번 축제는 8월4일부터 14일까지 11일간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교예술실험센터, 더 미디엄, KT&G 상상마당 시네마, 요기가 표현갤러리 등 홍대 인근 문화공간 10여곳에서 열린다. 특히 국제경쟁 상영섹션에 해당하는 ‘본선구애전’의 경우 대만, 홍콩, 중국, 네덜란드,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벨기에, 아랍, 필리핀 등 13개국에서 접수된 620여편의 작품 가운데 엄선된 45편의 영화가 11개 섹션으로 나뉘어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독일의 저명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인 하룬 파로키의 영화 <어떤 비교>도 포함된 다양한 상영작들을 통해 기존 영상관습에 묶이지 않은 창의성과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발랄한 애니메이션부터 묵직한 실험영화까지

<만세이아: 죽은 자들의 도시>
<여성 복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3편의 영화 중 <만세이아: 죽은 자들의 도시>(2011)는 이집트 여행 중 알게 된 ‘죽은 자들의 도시’라 불리는 장소에 관한 윤주영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섹션5. 반전의 여성학’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 작품은 공동묘지이자 50만명이 거주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한 도시에서 핸드와 제납 자매를 만나면서 이집트에서의 여성의 삶과 인권문제를 조명한다. 비교적 단순한 인터뷰 형식과 더불어 황량하게 펼쳐지는 도시 이미지는 그녀들의 삶과 교차되며, 침묵의 그림자 뒤로 거대한 무덤의 이미지가 스크린 위로 떠오른다. 또 한편의 개막작인 말린 밀러, 필립 츠포러 감독의 <여성 복서>(2008)는 5분20초의 댄스필름 뮤직비디오이다. ‘그레이트 더 웨이트’의 댄서이자 안무가인 다나 미셀이 링 한가운데에서 역동적이면서도 정밀한 율동을 보여주는 이 영상은 신체에 대한 탐구와 영상 리듬의 조화로운 결과물이다.

‘섹션1. 달콤한 너의 도시’에서는 길동민 감독의 <식사하세요>(2008)와 김영근, 김예영 감독의 <도시>(2010)가 눈에 띈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바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과 풍경을 재기발랄하게 표현한 이 애니메이션들은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그린 도시 우화이다. 집에서 밥을 먹을 겨를도 없는 현대인의 일상을 그려낸 <식사하세요>의 의인화된 전기밥솥은 도시인의 우울함 그 자체이며 틀과 벽, 옷과 같은 모든 껍질을 벗겨낸 도시의 모습을 그린 <도시>의 알몸 풍경은 기발하면서도 아름답다.

쉽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작품들도 있다. 최진성 감독의 <이상, 한가역반응>(2011)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극실험영화다. 1937년 4월, 작가 이상이 동경부속병원에서 객사하기 직전의 반복되는 실패의 시간들을 추적하는 이 영화는 2011년 현재까지도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 마치 유령처럼 반복해서 떠돌아다니는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활용된 이상의 난해한 소설과 시를 영상과 병치하는 가운데 사이를 떠도는 불투명한 텍스트를 잡아내려 애쓴다. ‘섹션3. 만개, 코미디’의 <스타더스트>(2010)는 니콜라스 프로보스트 감독의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소설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는 실험영화다. 카메라를 숨기고 라스베이거스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이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 존 보이트, 데니스 후퍼, 잭 니콜슨까지 등장시키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웡 와이 킷 감독의 <결정적 순간>(2010)은 ‘섹션7. 관점의 쓰임’의 극영화다. 유명한 사진 저널리스트 람 카이 청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그의 동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정확한 사진, 결정적 순간에 집착하는 저널리스트의 모습을 통해 사진이 가진 힘, 저널리스트로서의 도덕적 책무, 나아가 물체와 대상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적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서부영화이면서 서부영화가 아닌 이형석 감독의 <서부영화>(2010)나 양아치 감독의 <밝은 비둘기 현숙씨, 경성>(2010)과 같은 미디어아트는 영화와 동일한 효과를 지니면서도 영화가 아닌 형식의 일탈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를 메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안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형식의 재구축과 유희는 그동안 우리가 습관적으로 온전히 누려왔던 장르의 환상을 비틀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뉴미디어아트 초청전’ 등 전시·기획전 마련

‘Nemaf 2011’은 미디어간의 경계를 허물고 융복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축제답게 다양한 전시와 특별 기획전을 통해 상상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대안 영상을 탐구한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세 가지 섹션으로 만날 수 있는 ‘뉴미디어아트 초청전’의 경우 참신함이 돋보이는 신작과 해외 아티스트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시선을 끈다. 그중 ‘대안영화/미디어아트 장르전’에서는 디지털 인디뮤직비디오가 소개될 예정이며, ‘사운드영화/아트’에서는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영화가, ‘대뇌와 성기 사이’ 섹션에서는 성에 관한 파격적인 영상 예술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수지 실버, 게리 힐 등의 ‘작가특별전’은 물론, 전세계 대안영화/뉴미디어아트의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쓰임’에서도 대안영화의 가능성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본선구애 전시전’에서는 사각의 스크린을 벗어난 대안영상매체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무릇 제약이 없을수록 상상은 자유롭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난해하기만 해도 곤란하다. 거창하게 ‘뉴미디어 아트’라 명명했지만 미리부터 겁먹고 벽을 쌓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것을 애써 정의내리고 결정짓는 대신 단지 창의와 가능성을 목격하는 희열을 즐길 준비만 하면 된다. 그렇게 고정되지 않는, 그러나 멈추지 않는 자유로운 변화에의 의지야말로 Nemaf 2011의 본질이다. 관습과 틀에 저항하는 창조적 에너지의 최전선에서 경험하는 고민과 대안들은 미디어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그 가운데 다음 세대의 영상문법을 미리 맛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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