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기다 차를 세워놨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그러십니까?
-헉. 구루마가 말을 하네….
=뭐 이런 걸로 놀라고 그러십니까. 저는 <카2>의 주인공 라이트닝 맥퀸입니다. 세계여행 중에 한국에 잠시 들러서 쉬던 참이었어요.
-오오 마침 잘됐다! 자동차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아요. 사실 제가 지난 주말에 차가 한대 생겼거든요. 근데 면허딴 지 15년이 넘어서 엑셀과 브레이크도 구분이 안돼요.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숨이 가쁘고 겨땀이 박연폭포처럼 솟구치기 시작하는 게 아주….
=이 나라에서는 그럴 만도 하죠. 지금 제 꼴 보이십니까?
-어머나. 꼬라지가 왜 이래요? 사이드는 모조리 다 긁혀 있고. 보닛 안에서 진흙이 막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휴, 말도 마세요. 일단 부산으로 배를 타고 입국하는 순간 죽을 뻔했습니다. 부둣가 도로를 달리는데 컨테이너를 실은 거대한 트럭들이 깜빡이도 안 켜고 왼쪽, 오른쪽으로 막 끼어드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하 이 나라는 아예 깜빡이를 켜는 법규가 없는 나라인가보다.
-부산 운전자들이 유독 좀 험하긴 합니다. 저처럼 호쾌한 부산 남자들의 기질이라고만 생각해주세요.
=호쾌는 무슨. 겨우 적응을 한 다음 영도쪽으로 향하고 있었어요. 근데 ‘어버이 연합’인가 하는 피켓을 든 영감들이 부산대교에서 차를 세우더니 불심검문을 시작하더군요. 경찰도 아닌 분들이 왜 다리를 통째로 막고 제멋대로 검문을 하는지. 역시 이 나라는 법이 없더군요. 게다가 한진으로 침투하려는 빨갱이가 틀림없다며 피켓으로 막 지붕을 두들기고. 흑, 변명을 해도 안 통하는 게 제가 하필 또 빨간색이잖아요.
-가스통으로 안 맞은 게 다행입니다. 그분들 평소 주무기가 가스통이거든요.
=그러고는 서울로 올라왔죠. 중심가라는 강남대로에서 근사하게 한번 달려보려 했더니 도로는 사라지고 한강 지류가 막 넘실대더라고요. 말을 들어보니 <오세이돈 어드벤처>인가 하는 영화를 찍는 모양이던데. 겨우 세트장을 빠져나와 우면산 앞 도로를 지나가는데 이번엔 산에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겁니다. 거기 파묻혀 있다가 이틀 만에 탈출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속히 미쿡으로 돌아가시는 편을 권해드립니다. 차라리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 속으로 들어가시는 편이 여기보단 안전할지도 몰라요.
=제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름을 채우려고 했는데요, 이 나라 기름값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