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악동 뱅크시의 ‘커밍아웃’을 기대했다간 오산이다. 후드 모자를 뒤집어써서 그의 생김새는 전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변조되어 있다. 유명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는 지난 10년 동안 대대적인 스캔들과 무수히 떠도는 헛소문으로만 존재를 알려왔다. 뱅크시의 팬이라면 그가 직접 연출한 다큐멘터리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할 텐데, 아쉽게도 다큐멘터리 안에 그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서둘러 기대를 접을 것까진 없다. 그래피티 작가들의 위험천만한 야화(夜畵)를 구경한 뒤에 뱅크시는 진짜배기 선물꾸러미를 내준다. 뱅크시는 자신에 관한, 티에리의 다큐멘터리가 형편없는 수준임을 확인하고 직접 연출 의사를 밝힌다. 대신 티에리는 그래피티 작가로 변신한다. 옷을 바꿔 입은 왕자와 거지처럼 뱅크시는 카메라를 들고 티에리는 스프레이를 든다. ‘Mr. Brainwash’라는 세례명을 받고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한 티에리의 갖가지 해프닝은 폭소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전시회 개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작품 배치조차 끝내지 못했지만 MBW는 전시회 홍보를 위한 인터뷰에 여념이 없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 MBW의 고집 앞에 스탭들은 다신 그와 일하지 않겠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제대로 배꼽 잡는 포인트는 MBW의 전시회 <인생은 아름다워>가 놀라운 인산인해의 기적을 이루고, MBW가 현대미술의 새로운 재능으로 추앙받는 대목이다. 뱅크시는 이번에도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대신 얼간이를 스타로 만드는 갤러리의 은밀한 거래를 꼬집는 데 성공한다. 진짜 예술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드는 이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굳이 숨기지 않고도 몰래카메라의 목적을 손쉽게 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