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의 미덕은 적어도, 전쟁을 스펙터클하지 않게 보여줬다는 데 있다. 카메라는 전장을 관망하고 죽음은 미화되지 않는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시체들을 클로즈업 대신 배경으로 남긴 것도 좋았다.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저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전쟁이 권력자들의 논리에 의한 대량학살임을 수시로 까발린다. 그 맥락에서 한반도는 죽음과 살인, 혹은 그런 위기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긴장을 완화하는 건 결국 음악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 김광석이 있었다면 <고지전>에는 <전선야곡>이 있다.
50년에 발표된 <전선야곡>의 작곡자는 박시춘으로 당시 그는 해군 정훈국 제2소대장이었다. 음악인들 다수가 전시에 ‘동원’된 결과였다. 3절까지 있지만 영화에서는 가장 서정적인 1절만 등장한다. 안개 속에서 남북 병사들은 이 노래를 합창하며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순간을 연출한다. 하지만 정작 노래는 국방부에 의해 남한병사의 사기 고취(어머니를 위해 빨갱이 무찌르자)와 민간의 반공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역사적 사실은 영화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이때 중요한 건 권력자들은 언제나 문화예술을 통제하고 도구화한다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내전에서도, 군부독재에서도, 심지어 21세기에도 이 점만은 놀랍게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