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아무리 하의 실종이 유행이라도…
2011-08-24
글 : 김도훈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시저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거예요? 사실 제임스 프랑코가 영장류 보호소를 방문했을 때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면 마냥 행복하게 살 수 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의 손을 거절하는 순간 선생님은 혁명을 머릿속에 그리고 계셨나봐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요. 전 제가 인간과 다를 게 없다고 여겼어요. 그런데도 그는….

-아! 목줄이 문제였군요. 프랑코씨가 마치 강아지를 다루듯이 목줄을 손에 쥐고 있었을 때, 확실히 시저 선생님 얼굴에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캬. 목줄이 이끈 혁명이라!
=사실 그건 아니고요. 목줄이야 뭐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죠. 또 영장류를 바깥에서 데리고 다닐 때는 견공들처럼 목줄을 하는 게 캘리포니아 법규거든요. 전 준법정신은 강한 편이라서요.

-아유, 제가 바봅니다. 목줄이 문제가 아니라 보호소에 갇혀 있는 다른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들의 권익이 문제였던 거군요. 그들을 포악한 말포이의 손에 두고, 아, 말포이가 아니구나, 어쨌든 말포이 닮은 사악한 인간의 손에 두고 혼자서만 빠져나갈 순 없었던 거죠.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아닌데. 그것도 아닌데.

-그럼 대체 이유가 뭐였어요? 왜 프랑코씨를 따라 집으로 가지 않은 거예요?
=이 색희가 바지를 안 가져왔잖아요.

-바… 지… 요?
=바지 말입니다. 바지. 영어로는 팬츠. 영국식 영어로는 트라우저.

-그런데 대체 바지를 안 가져온 게 뭐가 어땠기에요?
=기자님은 바지 안 입고 취재갈 수 있어요? 저도 인간만큼 지능이 숙성한 영장류입니다. 그런데도 제임스 프랑코 이 색희는 평생 저에게 바지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빨간색 스웨터만 허락하더군요. 왜 저에게는 상의만 허락하고 하의는 허락하지 않는 겁니까. 도덕적 수치심을 가려주는 건 상의가 아니라 하의라고요. 그때 전 생각했죠. 이 인간이 나를 진짜로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는 생각하지 않는구나! 혁명을 결심했던 순간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아아. 바지 한벌이 불러온 혁명이라니….
=혁명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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