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워 죽겠다. 윈저 공 말이야. 남성복 역사나 스타일에 관한 책만 펼치면 맨 앞장을 꿰차고 있으니 요즘 같아선 가족들 얼굴보다 윈저 공 얼굴을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혹시라도 윈저 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설명하자면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조지 6세의 형(가이 피어스)이자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세기의 로맨티시스트 되시겠다.
<킹스 스피치>를 열심히 본 사람 중 유독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남자가 또 ‘한 멋’ 하던 남자다.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지드래곤쯤 됐달까. 윈저 공은 특유의 도전정신과 반항심을 바탕으로 격식과 법칙에 얽매여 있던 당시의 남성복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필드에 나갈 땐 반드시 재킷을 걸쳐야 한다는 골프 복장의 규칙을 깨고 페어아일 스웨터를 걸친 채 시합에 출전해 전세계적으로 페어아일 스웨터를 유행시켰다나 뭐라나. 수트 대신 캐주얼한 재킷과 바지를 매치한 세퍼레이츠(우리 아빠식 용어를 쓰자면 ‘콤비’) 스타일로도 격식을 차릴 수 있다는 걸 맨 먼저 증명했다나 뭐라나. 넥타이 매는 법부터 포켓 스퀘어 꽂는 법, 심지어는 구두 매듭 매는 법까지 그가 유행시키거나 최초로 시도한 스타일이 어찌나 많은지 애초에 시작을 말아야지 시동 한번 제대로 걸렸다간 그것만 읊어대다 날밤 새기 십상이다.
그나저나 좀 이상하지 않나? 심슨 부인 말이야. 내가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사진을 좀 봐서 아는데 심슨 부인이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그 품으로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거든. 그것뿐이랴. <킹스 스피치>에서 보니까 매력적인 척은 있는 대로 다 하지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비호감’ 그 자체던데…. (여기서부터 잠깐 19금!) 그러니 두 사람의 사진을 볼 때마다 일종의 의혹, 심슨 부인이야말로 신체적으로다가… 그 왜, 남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걸 타고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윈저 공은 20세기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 스타일 좋은 남자일수록 여자 보는 눈이 까다롭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그러니 나의 이런 의심이 억울하다면 심슨 부인은 얼른 무덤에서 일어나 진상을 규명해야 옳을 것이다. 박색에 가까운 얼굴과 접시라도 깰 듯한 목소리로 세기의 스타일 아이콘을 사로잡은 비결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라, 규명하라!(고 쓰고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읽는다. 뭐라고요? 그건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요? 아 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