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형용사> Politist, adjectiv(2009)
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상영시간 110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2.0 루마니아어
자막 영어 / 출시사 아티피셜아이(영국)
화질 ★★★☆ / 음질 ★★★ / 부록 ★★☆
올해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누리 빌게 세일란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는 창 바깥에서 시작해 그 반대로 끝난다. 도입부의 카메라는 창 밖에서 세 남자가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는 걸 본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서 부검을 맡은 의사는 창 밖으로 모자가 걸어가는 걸 바라본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그들이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상영시간의 2/3에 해당하는 90여분 동안 영화는 범죄 현장을 맴도는 일군의 남자들을 줄곧 바라보거나 그들의 심심한 대화를 들려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한 남자가 죽어 땅에 파묻혔다는 사실뿐이다. 보통의 범죄영화는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경찰은 범인을 어떻게 체포하는지, 사건 뒤에 숨은 비밀은 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세일란은 그런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고 누가 진짜 범인인지, 혹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무엇인지 따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근작 중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몬테 헬만이 지난해 칸영화제의 마켓에 내놓은 오랜만의 신작 <로드 투 노웨어>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도입부에서 헬만은 사건을 재연하는 대신 집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가는 모습과 집 바깥으로 누군가가 나오는 모습만 담는다. 거기서 뭐가 정말로 벌어졌는지 헬만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두 작품에서 보듯 영화는 명사나 동사가 아니다. 그들은 사건과 사건의 진행에 집착하는 건 영화의 윤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 영화는 형용사다.
지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폴리스, 형용사>는 두 작품과 궤를 같이한다. <폴리스, 형용사>는 한 고등학생을 대마초 혐의로 수사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는 전작과 동일한 공간을 배경으로 루마니아 사회를 탁월하게 풍자하고 있는데, 이번 영화의 진정한 경이로움은 형식에 있다. 80분에 걸쳐 주인공이 현장에서 혐의를 캐는 모습을 뒤따르던 영화는 마지막 30분을 그와 상관이 사전을 앞에 놓고 ‘양심, 법, 도덕’을 논하는 장면에 할애한다. 루마니아어로 형용사 ‘폴리스’는 ‘경찰의 독창적 능력으로 범죄가 해결되는 과정을 다룬 영화나 소설’을 의미한다고 한다. 포룸보이우는 고전적인 형사극이었던 첫 스크립트를 완전히 바꾸어 전대미문의 형사 드라마를 완성했다. <폴리스, 형용사>는 묘사에 충실한 수준을 넘어 영화 자체가 형용사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극사실주의의 표본이라 할 영화는 눈만 부릅뜬 채 절대 사건 속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영화는 명확한 언어를 구사한다. 포룸보이우가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을 언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지식한 주인공과 악역에 해당하는 상관 사이에서 누가 옳은지,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건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게 아니라 극장을 나서면서 느끼는 삶의 고독, 슬픔, 신비일 것이다. 점점 이야기로부터 멀어지는 이런 유의 영화가 영화를 더 흥미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관객에게도 과연 행복한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폴리스, 형용사>는 크리스티 푸이유의 <오로라>와 함께 근래 나온 가장 중요한 루마니아영화다. 배급상의 문제로 <오로라>의 홈비디오 출시가 요원한 지금, <폴리스, 형용사>의 DVD라도 꼭 찾아볼 것을 권한다. 영국판 DVD는 인터뷰, 예고편을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