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최근 각종 송사에 휘말린 심형래씨에 대한 한 영화인의 냉정한 평가다. <디 워> <라스트 갓 파더>의 제작자이자 감독인 심씨가 코너에 몰릴 대로 몰렸다. 8월31일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 영구아트와 심씨를 상대로 낸 대출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상고가 남아 있으나 결정이 번복되지 않을 경우 심씨는 25억5천만원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에 앞서 7월11일에 영구아트 건물에는 압류 결정이 내려졌다. 위기는 기회라며 재기의 카운터펀치를 날릴 힘이 심씨에겐 남아 있지 않다. 고통을 함께 감내할 원군이 없어서다. 심씨를 대표로 ‘모셨던’ 영구아트 직원들은 8월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8억원 상당의 임금 및 퇴직금 체불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심씨의 곤란은 계속된다.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갖가지 구설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엔 그가 회사 직원들에게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 인테리어 일을 시켰으며, 회사 자금으로 카지노를 자주 드나들었다는 비난으로 가득하다. <추억의 붕어빵> <유령도둑> 등 영구아트가 제작 중이라고 알려진 프로젝트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CJ 관계자는 “(<추억의 붕어빵>은) 같이 하기로 한 건 아니다. 개발 단계에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오긴 했으나 논의는 지금까지 답보 상태”라고 설명했다.
심씨는 각종 논란에 대해 함구한 채 ‘잠수’했다. 법적 결정들은 좀더 기다려봐야 한다. 사태의 전말을 알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현 시점에서 ‘심형래 사태’가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진 않다. 심씨를 재정적 곤궁에 몰아넣은 <라스트 갓 파더>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미망 아래 “거액의 국고보조금이 들어간” 영화다. <주간경향>에 따르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09년 ‘원소스 멀티유즈 킬러 콘텐츠 제작지원’, ‘전략시장 진출 글로벌 콘텐츠 유통 활성화’ 사업 등을 통해 <라스트 갓 파더>에 약 17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과거 한국수출보험공사) 역시 문화수출보험 1호 작품으로 <라스트 갓 파더>를 선정하고 30억원 상당의 대출보증을 서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한 개인의 오판에 있지 않고, 그 오판을 지지한 담론에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곧 수백억원짜리 블록버스터와 동일하게 받아들여선 안된다. <디 워>만 해도 계약상 손실부담 등으로 수익을 거의 가져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원 기관들의 무책임한 실적주의야말로 과대포장된 블록버스터를 양산하는 것이다.” 한 영화정책 관계자의 말이 일러주는 바는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난” 심형래의 저력을 한 개인의 위대함으로 오해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영화강국, 문화대국은 스스로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가 칭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불러줘야 한다. 링에 오르기 위해 체중만 불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라스트 갓 파더>에 투자하는 것보다 해외 각 대학의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한국영화 관련 자료를 비치하는 것이 더 낫다(영화진흥위원회가 추진하던 이런 사업들은 현 정부 들어 모두 사라졌다). 한방으로 역전하려 드는 건 화를 자초하는 카지노식 사고다. 카지노는 정선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