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풍성한 한가위 되소서
2011-09-05
글 : 문석

추석 합본호를 만들기에는 더운 날씨다. 올 추석이 비교적 빠른 까닭인 듯한데 30도가 넘는 와중에 합본호를 만드니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예전에 추석 합본호를 만들 때면 긴팔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주간지를 만드는 이들에게 합본호는 축복이요 선물이다. 풍성한 지면에 맛깔나는 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께 드릴 수 있으니 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솔직히 말씀드리겠다. 실상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과 선물은 그동안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합본호 휴가다. 잡지 배송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쉬는 거지만 이 휴식의 달콤함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노는 거만 좋아한다고 비난하지 마시라. 좋은 휴식이 있어야 좋은 기획과 기사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니(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처음부터 기획했던 건 아닌데, 만들면서 보니 이번 추석 합본호의 주제는 ‘비밀’이다. 한국의 영화인 25인이 말하는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영화리스트’, 이름하여 ‘영화 버킷리스트’도, 배우 10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연기의 본질을 파헤치는 특집기사도,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스캔들 이야기도 결국에는 숨겨져 있던 비밀의 상자를 개봉하는 기분이다.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다는 건 묘한 즐거움을 주는데, 이 기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류승완 감독의 <007 문레이커>에 관한 어린 날의 추억이나 신세경이 <타락천사>를 보고 ‘내가 저 여자보다는 낫구나’라는 위안을 얻었다는 이야기, 박중훈과 박해일이 나란히 <행오버>를 꼽았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점이 많아 오래 준비해서 100명 정도에게 질문을 던질걸 그랬다는 생각마저 든다. 죽음을 대하는 영화인 각각의 다양한 생각 또한 알게 된 기분이다. 봉준호 감독의 리스트를 보니 이번 추석 휴가 때는 몇년 전 중국에서 사왔던 <화니와 알렉산더> 짝퉁 DVD 박스 세트(TV판과 극장판이 모두 담겨 있다)의 포장을 끌러야 할 것 같다.

김혜리가 꼼꼼하게 정리한 영화 연기론을 읽고 있자니 신비의 영역 안으로 한발 들어간 듯하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잘하는 연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게 된 느낌이다. 워낙 구체적인 사례와 상황이 언급되다 보니 연기의 본질을 읽어내려는 관객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할리우드 스캔들 이야기도 비밀스러운 커튼을 열어젖히는 쾌감을 준다. 물론 여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과 감독 니콜라스 레이, 그리고 그의 양아들 사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보면서 턱이 빠질 뻔했지만.

여름철 비가 많이 와서 걱정스럽긴 하지만 오곡과 과실이 풍성한 추석이 되길 빈다. 모두들 <씨네21>의 ‘비밀 3종세트’와 함께 즐거운 추석 맞이하시길!

ps. 그동안 우리와 함께했던 김용언 기자가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난다. 그녀 또한 앞으로 풍성한 나날을 맞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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