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타인의 취향] 끊을 수 없는 발레의 쾌감
2011-09-16
글 : 김용언
에드가 드가의 <펠레티에 거리의 오페라 발레 홀>

춤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친구네 집에 모여서 봤던 내 인생 최초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더티 댄싱> 때문이다(지금 보면 대체 왜 청소년 관람불가인지 이해 불가다). 그땐 주인공들의 춤이 살사나 차차차의 변형임을 알지 못한 채, 어떻게 인간이 저런 동작을 취할 수 있는가만 궁금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바즈 루어만 감독의 <댄싱 히어로>를 봤다. 황금색 재킷을 입은 주인공 스캇이 무도회장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미끄러져 나오는 클라이맥스에서 소리를 꺅 질러버렸다. 한동안 스캇을 연기한 폴 머큐리오를 만나러 호주로 유학가겠다는 얘기를 헛소리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춤을 실제로 배운 건 2004년부터다. 스윙댄스 동호회와 살사댄스 동호회에 가입하여 각각 4개월씩 무용 슈즈가 닳도록 연습했다. 어떤 면에서 춤은, 그러니까 ‘막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춤’을 배운다는 건 거의 막노동에 가까울 만큼 고되고 어렵다. 하지만 그 춤마다 엄격한 규칙과 매끄러운 애티튜드를 요구한다. 보는 사람은 전혀 그 고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모든 동작이 유연하게 흘러가야 한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력에서 ‘예술성’이 얼마나 놀라운 경지인지, 춤을 배운 사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2년째 성인 취미 발레를 배우는 중이다. 발레는 지금까지 배웠던 춤 중 가장 까다로운 장르다. 무릎은 언제나 바깥쪽을 향하고 발등 또한 꼿꼿하게 일직선을 유지해야 한다. 팔꿈치 역시 바깥쪽을 향하게, 어깨부터 팔꿈치를 내려와 손가락 끝까지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도록 신경써야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보통 25분 가량 온몸의 근육을 골고루 건드리는 스트레칭을 하고, 그 다음 30분가량 바(bar)를 잡고 움직이는 동작 연습을 한다. 안 배운 사람은 말을 마시라. 스트레칭 단계부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바 동작을 할 때부터 다리 근육 곳곳이 경련을 일으킨다. 센터 동작 순서에 이르면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지옥의 외인구단>이구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는 절대 쓰지 않는 근육이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는 모습, 가장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동작을 취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며 손가락 끝의 각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순간의 집중력은, ‘그냥 헬스’만으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던 쾌감을 준다. 발레는 춤인 동시에 대단히 격렬한 운동이지만, 그 쾌감 때문에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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